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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Sep 14. 2023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D-1

 입대 전날은 어머니, 형과 나 셋이서 논산역 주변에 숙소를 잡고 하루를 보냈다. 중요한 일정 전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차분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 집안의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수능 전날, 대학교 면접 전날 등 내 인생의 꽤 중요한 순간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고사장에 가까운 숙소를 잡아 하루를 함께 보냈다. 매년 12월 31일이면 가족이 다 함께 설악산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송구영신 예배와 함께 우리 가족은 늘 차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설악산 여행은 두 아들들이 직장이 생기며 지키기 힘든 전통이 되었지만 나는 혼자 있더라도 딱히 시끌벅적한 새해 전야제를 꿈꾸지는 않는 사람이 되었다. 전통은 습관이 되어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하지 않을때도 중요한 일을 앞두면 혼자 결전의 장소 주변을 미리 가서 탐색하곤 한다. 내가 그곳의 분위기, 그곳의 공기에 온전히 친밀해질 때까지 말이다.

 

 한 농구선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선수는 시합 전날이면 코트에 가서 드리블하며 코트 전체를 천천히 훑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관리자가 저녁 늦도록 코트를 맴도는 그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혹시 모를 바닥의 요철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나의 공이 다른 곳으로 튈지 모르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말하자면 그런 마음으로, 혹시나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가 버릴 불안한 정신을 위해 미리 장소를 살핀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필요한 짐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짐이라고 해 봤자 평소 출퇴근할 때 드는 가방 안에 다 들어갈 정도로 간소했다. 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논산으로 가는 길, 창 밖 도심의 풍경이 차츰 멀어졌다. 높은 건물들이 점차 낮아지고, 낮은 건물들도 드문드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곳이 섬 같았다. 이윽고 아무것도 없는 평지가 이어지고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풍경까지 이르자 문득 쓸쓸해졌다. '여기부터는 홀로 서는 곳' 이라 써진 간판이 어딘가에 서있는 듯 했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논산역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쯤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후에는 짐을 바닥에 던져두고 몸을 침대에 맡겨 얼마 남지 않은 여유를 즐겼다. 가방에 챙겨 온 평소 좋아하던 시집과 소설을 꺼내 읽었다. 새로운 책을 읽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


  이후 점심을 먹고 저녁까지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짧게 깎은 머리 사진이나 친구들에게 보내고 킬킬대며 있으니 서서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애써 잠재워둔 감정이 다시 일어나듯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밤은 온몸으로 기지개를 켜며 빠르게 자기의 범위를 넓혀갔다. 풍경에서부터 내가 있는 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마음 깊은 곳까지 뻗어왔다.


 그 순간 비로소 혼자 있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도 없이 가족도 없이 그저 나 혼자이고 싶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매일같이 왁자지껄하게 보내던 내가 비로소 마음을 정리하며 사회에 안녕을 고하고,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같은, 하늘에서 방금 뚝 떨어진 사람이 할 법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혼자 산책 좀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숙소를 나설 준비를 했다. 어머니는 혹여나 자식이 괜한 일을 벌일까, 감상에 빠져 우울한 산책을 하고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셨는지 자꾸 걱정스러운 말을 하셨다. 나는 "금방 들어올게요. 주변만 돌다가 올 거예요." 같은 안심이 될만한 말들을 늘어놓은 후에야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시내까지 직접 걸어가려고 하니 밝은 낮에 차를 타고 갈 때와는 전혀 다른 길이 펼쳐졌다. 길은 내 기억보다 훨씬 구불구불하고 길었다. 휴대전화의 지도 속 내 위치를 나타내는 빨간 점은 제자리에만 있는 듯했다. 나는 한때 밝게 빛나며 손님을 모았을 낡은 네온사인들 사이로 걸었다. 이어폰에 음악을 크게 틀고 가로등도 없는 길을 걸었다. 이대로 쭉 걸으면 한 점으로 사라지는 원근법의 일부가 되어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운 풍경이 될 것만 같았다.


 시내는 나오는 게 맞을까 내 거리 감각을 의심할 때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폭이 넓은 길에 다다랐다. 이삼십 분을 걸었더니 목이 말랐고 화장실이 급했다. 마침 카페들이 여럿 보여 서울에 있을 때 가장 많이 가던 스타벅스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숨이 턱 막힐 만큼 그리운 커피 향이 콧속으로 스몄다. 갑자기, 정말 미친 듯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 졌다.


 평소 나는 카라멜 마끼야또, 카페 모카 같은 단 커피들만 마시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내 기분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속이 느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나를 먹이는 어머니 덕에 위장이 꾸준히 만실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내 머릿속 역시 느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많은 염려, 스스로 느끼는 부담, 걱정 그리고 두고 온 것들에 대한 미련들이 내 머릿속에서 함께 부대끼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사회에서 하는 마지막 주문은 내 마음이 어떻든 간결하게 이루어졌다.


 한 시간 남짓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해결책이라곤 없는 막연한 불안들이 조금은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부딪혀봐야 알 일이라 생각하며 창문을 보니 이미 바깥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더 있다간 집 찾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카페를 나섰다.


 숙소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계셨고 형은 한참 준비하던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의 평범한 저녁 풍경이었다. 내가 들어오자 어머니는 함께 영화를 보자고 하셨다. <주디>라는 영화로, 1939년 개봉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역을 맡은 아역배우 주디 갈란드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였다. 여배우의 일생을 생각할 때 우울할 것이 뻔한 영화였지만, 어머니는 그런 사정까지는 잘 모르셨는지 멋진 여배우 이야기이고 화려하고 예쁠 것이라고 주장하셨다. 입대 전 어머니의 마지막 제안이었기에 나는 더 얘기하지 않고 "그런가요." 말하며 영화를 틀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매우 우울했다. 좋은 영화였지만 입대 전날 보기에 썩 괜찮은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괜히 미안했지 내 눈치를 살피며 영화의 좋은 점에 대해 나에게 설명하셨다. 나 역시 평론가인 양 영화를 분석하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내 자리에 누웠다.


 ‘생각처럼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닌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설득에 막연한 기대로 본 영화는 오히려 생각을 더 복잡하게 했다. 기분 좋아지라고 추억 만들자고 본 영화였는데 씁쓸한 기분만 남았다. 그러고 보면 입대를 준비하며 하려 했던 것들도 잘 된 것이 별로 없었다. 필리핀 여행을 가려했으나 큰 폭풍으로 인해 공항이 무너져 비행기 표를 환불받았다. 이후 호주에 있는 친구를 보러 가야지 생각했으나 코로나 1차 대유행 시기로 심각한 국제 정세 탓에 항공편이 모두 취소되었다. 코로나 여파는 꾸준히 이어져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 만나지 못하고 입대 전날에 이르렀다. 무기력한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 이어졌다. 


 문득 조금 전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받아낼 수 있는 즐거움은 얼마나 귀한가! 이제는 한동안 자유 없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던 지난 몇 달 같은 세월을 18개월 동안 보내야 한다. 내일부터 시작인줄 알았지만 이미 오래 전 시작되었다. 목적지가 정해진 순간부터 사실 발을 들여놓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값싼 감상에 빠져있던 찰나 새로운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고작 그런 것이 자유인가?


 내가 매우 기본적인 요소라고 여겼던 것들을 상실하자 그동안 그것을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마음껏 여행을 다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느끼고 싶은 감정을 느끼는 것. 지난 몇달간 내가 입버릇처럼 사랑한다 말하던 자유가 이런 것이었나? 사회에서 자유라 생각하며 누리던 것들을 모두 잃게 된 순간, 나는 어쩌면 ‘사회의 자유’라는 꽤 큰 범위의 틀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 착각하며 지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사회에서 벗어난 내 안의 자유, 어디에 있든 유지할 수 있는 나의 자유를 깨닫고 찾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외부의 상황이 영향은 줄 수 있으나, 본질은 굳건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본질이 굳건하다면, 외부의 상황은 새로운 경험이 될 뿐 나를 억압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늘 좇고 싶은 것이 이상이니까. 


 어머니가 나를 이끌고 어떻게든 미리 결전의 장소를 찾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아직은 어린 내가 새로운 상황과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지켜야 할 것을 조금 잃을까봐, 그곳에 익숙해지도록 도우신 것이 아닐까. 어미니 이제 안그러셔도 돼요. 내가 잘 이겨내볼게. 옆에 누워 주무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말을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아껴왔고 잃어버려 아쉬운 자유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같은 자유라면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떠올려보면 편안한 것이 모두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커피 주문을 위해 카페에 들어가는 모습보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나서는 모습이 늘 자유에 가까운 것이었고, 이처럼 스스로 자유를 위해서는 고난을 택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었다. 값싼 면죄부가 되어 나의 다른 가능성, 성장을 위해 고난으로 가는 자발적인 걸음을 방해하는 자유라면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다가올 모든 일에 조금은 초연해졌다. '이것은 내가 잊고 방치했던, 찾아야 했던 자유에 대한 나의 속죄다.' 라는 마음이었다.


 입대 전날은 하루가 참 길었다. 혼자 걸었던 길을 따라 내 생각들이 카펫처럼, 그 위의 먼지처럼 소복이 깔리는 상상을 하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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