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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Sep 06. 2023

누구나 입대는 처음이지

들어가며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 일정을 앞두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해야할까?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아주 과거의 일부터 떠올려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매일 부모님 지갑에서 동전 몇 개를 훔쳐 방과 후에 오락실에 갔었다. 보충수업이 있다느니 하는 거짓말을 잘도 지어내며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잦아지자 부모님은 나의 일탈을 금방 눈치채셨다. 어머니가 이를 담임선생님께 알렸고 등교 후 몇 시까지 교장실로 오라 하는 통보를 받았던 것이 첫 번째 기억이다.


 두 번째 역시 초등학생 때로, 학교 짱이라 불리는 다른 반 학생과 괜한 시비가 붙어 싸우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달리기나 잘했지 저체중에 키도 작은 내가 질 것이 뻔한 주먹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주변 여자아이들의 눈을 의식하며 어찌해보겠다고 학교 짱과 방과 후 놀이터를 예약해놓고는 남은 수업 시간을 지옥처럼 보냈었다. 


 당시에 나는 비극적인 미래를 봐버린 예언자처럼 두려움에 손톱 끝을 뜯었지만, 이제는 즐거운 추억거리로 얘기하는 기억들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기대되지 않는 일정의 마무리는 보통 이런 식이겠다. 언젠가는 추억이 될 거야. 


 하지만 일정이 너무 길다면? 잠깐의 해프닝으로 추억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할 것 조차 없는 공백기로 남는다면? 나의 인생 계획을 망쳐놓고 나를 무기력한 인간으로 만든다면?


 두번째 기억 이후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처세술이 늘며 위와 같은 사건의 빈도나 타격이 점점 줄어간 것 같다. 그러나 나의 행동의 결과로써 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무리 성숙해진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언젠가 추억이 되기는 할까 의심스러운 일정이 있으니 바로 입영 일정이다. 너무 길고, 무기력하게 시작하게 되는 일정.


 대한민국 남자라면 성인이 됨과 동시에 걱정하고 준비해야 할 것을 나는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걱정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일도 해보다가 ‘더는 미룰 수 없다. 너의 연애 나의 입대.’따위의 어느 학급의의 농담 같은 교훈처럼 입대를 신청했고, 병무청은 아주 빠르게! 나의 입영 일자를 한 달 뒤로 통보해주였다.


 입영 일자가 확정되면 그날 이전까지의 삶은 시한부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인들을 만나면 만날 때마다 오직 입대라는 한가지 이유로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군대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더 적극적으로 위로와 격려를 갈구했으면 좋았을 걸 싶다. 뭘 시작해도 성취하기까지는 남은 시간이 빠듯하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를 만나지 않는 날은 드라마나 보고 게임이나 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빠듯하다면서 영화는 또 몇십 편을 찾아보았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1998)>, <버킷리스트(2008)> 같은 영화를 보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어떤 바보 같은 짓이라도 다 해보려 하던데, 군대 죽으러 가는 거라고 말하긴 하지만 그 이후의 삶이 있다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입대는 정의하자면 잠시만 안녕이다. 그 때문에 오히려 객기는 부릴 수 없다. 그러나 마음가짐만은 사형선고를 받고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가짐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지은 죄를 뉘우치며, 평소 한 적 없는 선행을 베풀고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최대한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이 나를 각인시키고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서 편지 한 통 써 주길 휴가를 나왔을 때 만나라도 주기를 남몰래 기도하는 시간이다. 내가 없더라도 나를 잊지 마세요. 라고 요약해볼 수 있겠다.


 사람들은 대부분 군대를 어찌할 수 없는 공백기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와 친구와 만남과 부모님의 품까지 나를 둘러싸던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진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에서 튕겨져 나와 변화하는 것들을 구경만 해야 하는 것이 군대다. 공백기라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느끼기로는 아무것도 없는 공백은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이제 막 군대에 가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나에게도 군대는 인생길에 휑하니 뚫린 공백 같았다. 그러나 완전한 공백이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뿅 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도 아니요, 냉동인간이 되어 2년 남짓을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것도 아니니 내 인생길에 무언가 자국이라도 남기는 할 터이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고 무기력해질 필요 없다.


 어떤 시기가 단순히 공백기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이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이라면 더욱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버티는 데에만 모든 힘을 쏟게 된다. 그러나 내가 그려놓은 길에 나타난 내가 느끼는 공백기, 이는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나 스스로 공백이라고 해석하는 그 시간 중에도 다양한 일이 나에게 벌어진다. 내가 계획할 수 없는 일들, 계획할 수 없기에 맞닥뜨려 살아내지 않으면 어쩌면 평생 살아볼 수 없는 일들. 최소한 그 시간을 이겨낸 나 자신이라도 생겨난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제목을 붙여 자의적으로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전능할 수 없다. 절대자도 아니고, 자신에게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람은 더욱 아니다. 무자비해 보이는 절망의 시기 역시 나 혼자 그렇게 느끼고 지레 겁먹는 것일 수도 있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험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내 인생이 언제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질지는 누구도, 나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화가도 아니고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화가들이 유화를 그리며 흰 여백을 표현할 때 그저 비워두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 흰 바탕에 그린다고 해서 흰 구름, 흰 꽃잎의 자리를 비워 두지는 않는다. 붓의 굵기, 한 번의 터치에 걸리는 시간, 붓 끝에 찍어낸 흰 물감의 양으로 화가만의 흰 질감과 느낌이 드러난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런 음도 없이 지나가는 구간이 있다고 해서 의미 없는 구간이라 생각할 사람은 없다. 공백은 바로 이전의 혹은 직후의 감상을 이어가기 위한 장치가 되어 곡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지금 당장은 비어버린 시간이 텅 빈 공백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 기간을 나름으로 채워간다면 인생이라는 작품에 더 풍부한 질감과 의미가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니, 어쩌면 텅 비워두는 일 자체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모든 일이 이어져 엮이는 인생 속에서 군대라는 경험이 당신의 새로운 시작, 혹은 잠깐의 휴식, 혹은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울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누구나 입대는 처음이지만, 언젠가는 모두 멋지게 병역을 마치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된다. 내가 그러했고 여러분 역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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