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닭이 날아오면 겨울을 실감한다. 강 위에 우뚝 선 백로 사이로 반뼘 자란 오리가 무리를 지어 지나가고, 그 옆으로 뉴트리아가 헤엄친다. 오후 5시가 되면 뭍으로 다가온 고니가 자전거 소리를 듣고 물가로 멀어진다. 머리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도, 긴 꼬리로 유영하는 수달도 모두 추위를 가르며 나아간다. 겨울새를 보기 위해선 그들과 같은 추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주요 이동수단이 자전거였고, 혹독한 계절을 제외하곤 만족스러운 수단이다. 가파른 언덕과 열악한 도로 상황 탓에 포기했던 질주를 이곳에선 맘껏 할 수 있다.
나는 늘 내 발로 움직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면 멀리 갈 수는 있지만 만족도가 떨어졌다. 타고난 성정 탓인지 몸이 편한 순간을 받아들이기보단, 어려운 환경을 뚫어가는 성취감에 고조되는 편이었다. 자전거는 걸음보다 빠르고 짐 한 뭉치를 지탱할 수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몸이 허락하는 한 달릴 수 있다. 내 몸이 연료가 되는 순간에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흔히 말하는 러너스하이 때문인지, 성취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만 자전거를 탈 때는 자신이 기차나 새나 고라니처럼 느껴진다. 시골로 떨어져 나와 처음 둑길에 오른 순간부터 자전거는 늘 기묘한 설렘으로 다가온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자전거로 둑에 오른다. 사람이 드문 이곳에선 새가 이웃이다. 여름이면 덤불 속 유혈목이가 이웃이고, 겨울이면 얼음 위 활주하는 매가 이웃이다. 매는 이른 오전이나 16시 무렵에 가장 활발하다. 그 시간이면 붉은 대기 속에서 까마귀 두 마리가 매 한 마리를 쫓는다. 매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까마귀가 조여오듯 뒤따른다. 매는 더 위로 오르거나 앞으로 나아가지만 대체로 까마귀가 이기고, 매는 강줄기 너머 산으로 달아난다. 어떤 날에는 나무 위에 들어앉은 거대한 매가, 어떤 날에는 까마귀보다 작은 황조롱이가 둑으로 날아든다. 두 종을 가늠하기 위해 라이딩 중 고개를 드느라 비틀대지만, 빨리 가라고 경적을 올릴 이가 없다.
겨울새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장갑이 필요하다. 강바람을 이겨내기 위한 털양말과 털장화에도 발가락이 잘려나갈 듯 시린 한파가 덮쳐온다. 자전거를 타고 오갈 때면 손을 허벅지에 몇 차례 두드린다. 마비된 감각이 충격에 저릿하게 아파오다가 순식간에 얼어버린다. 모자 아래 귀도, 마스크 속 코도 아릿한 통증만 남기고 사라진다. 감각이 중추에서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 눈이 예민하게 빛난다. 훅훅 뿜은 숨이 눈꺼풀에 하얗게 맺힌다. 겨울둑 위를 달릴 때면 늘 육체가 한 부분씩 떨어져 나가고 눈앞 풍경만 남는다. 추위에 얼어붙은 정신이 굴러가기도 전에 규칙적으로 돌리는 페달을 따라 풍경이 휙휙 스쳐간다.
서릿한 조팝나무와 하얗게 언 강은 멈춘 듯 고요하다.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오리 울음과 날갯짓이 경과를 알릴 뿐이다. 밤이면 이 소리마저 멎는다. 겨울밤 둑에는 비릿한 피냄새가 난다. 코에서 곧장 뇌로 꽂히는 싸늘한 공기가 지독히 아리다. 둑에는 인공빛이 없다. 기차역에서 베랑길 데크를 지나 둑까지 올라와도 여정은 둑에서 시작된다. 오가는 차량도 자전거도 없는 겨울은 유독 어둡다. 오른편에는 악산이, 왼편에는 끝 모를 밭이 있을 뿐이다. 둑 끝은 보이지 않고, 발아래도 까맣다. 눈을 깜빡이면 속눈썹에서 하얀 가루가 눈처럼 떨어진다.
묵직한 어둠 위로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뻥 뚫린 양옆에서 둑을 향해 맹렬히 불어온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페달이 무겁다. 허벅지를 팽팽하게 부풀려도 뒤로 밀려난다.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은 오롯이 내 다리에 달려있기에 바람이 거세어질수록 하얀 증기가 몸에서 피어오른다. 홧홧한 열기를 뿜으며 천천히 나아간다. 한참 달리면 산 벼랑을 오르는 기차가 멀리서 비춰온다. 어느 순간엔 달이 떨어지듯 하늘부터 환하게 밝아온다. 문명이 닿지 않은 길 위로 빛이 쏟아지고 잠시 멀어진 눈을 깜빡이는 순간 굉음이 팔에 스치듯 가까워지다, 검은 강과 땅을 가르며 사라진다. 나는 둑 위에 풍경과 함께 한 뭉치 어둠으로 돌아간다.
나는 여전히 둑 위를 달린다. 매일 같은 시간 까마귀에게 쫓기는 매를 보며 페달을 돌린다. 명확한 이유도 목적도 없지만 밭으로 간다. 때가 되면 기러기가 날아오르고 오리가 흰 엉덩이를 내밀며 잠수한다. 따뜻한 볕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비가 쏟아지면 어깨가 젖은 채로, 시간을 잊은 듯 달린다. 어느 순간에는 환한 보름달이 손등을 비추며 떠오르지만 그보다 오랜 시간 어둠에 익숙해진다. 길 너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오갈 수 없는 길 하나만 덩그러니 남은 듯한 순간이 이어지지만 발을 젓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또 매가 이륙하고 까마귀가 뒤쫓고 그 셋을 자전거가 따른다. 그렇게 풍경 속 일원이 되어 매일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