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인데, 5번째 회사입니다
3년 차인데 5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한 회사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1개월을 있었죠.
이 이야기는 나와 같은 사회 초년생을 위한 이야기고요.
인턴, 신입, 주니어를 위한 존잼 스타트업 스토리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디자인, 마케팅, 서비스 기획, 물류, 사업전략까지 찍어먹어 봤지만 아직까지도 난해하기만 한 것이 바로 "직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난해함은 스타트업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cf. 이야기 배경 : https://brunch.co.kr/@creble3/14
cf. 첫 번째 이야기_연봉협상 : https://brunch.co.kr/@creble3/15
cf. 두 번째 이야기_스타트업문화 : https://brunch.co.kr/@creble3/16
문화만큼이나 직무 역시 회사by회사 즉 제멋대로인 경우가 허다하다.
스타트업 인턴~주니어 단계의 인원에게 계약서 상 명시된 "직무"가 어떤 의미인지, 역시 직접 경험한 15인 이하 스타트업 이야기를 통해 얘기해본다.
[목차]
- 직무가 뭘까
- 15인 이하 스타트업의 현실
- 회사의 사업전략을 보면 직무가 보인다
- 커리어를 고민하는 주니어에게
WE WANT YOU!
세상에 직업은 많고 직무도 다양하다. 그러나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회사는 그 직무의 범위가 그렇게 넓지도 않다. 기획을 하고, 개발을 하고, 마케팅을 한다.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AI를 설계하기도 하고, 회계를 하기도 한다. 회사의 업종에 따라 실제 하는 일은 차이가 있겠지만, 직무라는 명칭 자체는 다르지 않다.
스타트업 채용공고에 DBA도 있고 QA도 있던데요?
15인 이하 스타트업은 해당되지 않는다. 해당 직무를 채용 중인 회사의 정보를 1분만 확인해보라. 15명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이 모인 회사 거나, 수십억 대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빠르게 규모를 불리고 있는 회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
cf.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매우 치밀한 BM구조를 지닌 최소한의 인원으로 사업 유지가 가능한 정말 대단한 회사일 것이다. 연락주세요
그래서 직무가 뭔가요?
직무는 그저 근로계약서에 찍힌 글자이며, 명함에 찍히는 글자에 불과하다. 글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해당 직무로 "회사"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느냐이다. 하는 일이 분명해도 회사에 기여하지 않을 수가 있고, 하는 일이 분명하지 않더라도 회사에 기여하고 있을 수 있다.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cf. 물론, 해몽은 Fact로만 푸셔야 한다. 거짓말은 들통난다.
글로벌 온디맨드 P2P 플랫폼을 운영하는 S사에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무로 입사하여 11개월 간 근무했다. 회사의 연혁은 2~3년 차였고 구성원은 10명 내외였다. 입사 초기에는 서비스 기획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나름 서비스 기획 담당자에게 기대할 법한 일들을 했다. 결과물도 나왔으니 말이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Paid광고 캠페인 관리, 수출물류, CS응답, 운영 업무 등 다양한 업무들이 산재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서비스 기획 업무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외부 물류사에 보내는 이메일을 쓰다 생각에 잠겼다.
내가 서비스 기획자가 맞나?
국내 온라인 마케팅&판매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M사에 브랜드 디자이너라는 직무로 입사하여 7개월 간 근무했다. 회사의 연혁은 1년 차였고, 구성원은 5인 미만이었다. 주된 업무는 대행을 맡게 된 회사의 상품에 대한 상세페이지, 마케팅 콘텐츠를 제작하는 업무였다. 입사 초기에는 회사가 큼직한 총판권들을 따오면서 디자인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빠듯하게 일해야 했고, 절대적인 시간을 많이 쏟으면서 일할만큼 많이 배웠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회사는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처리해야 할 디자인 업무 역시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온라인 판매채널 관리, 사입재고 출고처리, 재고관리, CS응답 등에 보내게 됐다.
내가 브랜드 디자이너가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일주일, 40시간의 업무시간 중 디자인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8시간 미만이었으니까.
앞선 2개 예시를 경험한 직후에는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커리어 괜찮은 건가?", "회사가 변했어..."와 같은 생각.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어느 부분이 다르냐면,
01. 우선 회사의 잘못은 아니다. 회사가 나에게 특정 업무를 요청했더라도, 받아들이고 해내는 것은 온전히 내 선택의 문제다. 내 직무에 맞는 업무를 회사가 주지 않는다면 직무에 맞는 업무를 하겠다고 회사에게 제대로 요청하는 게 우선이다. 내 직무에 맞는 업무를 회사가 주지 못하고 이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말하자. 주니어의 특권은 회사에 깊이 관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사의 사정보다는 내 사정이 중요하다.
cf. 원하는 바는 "명확하게" 말하셔야 한다. 기대하는 reaction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별 5개)
02. 커리어에는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말자. 주니어의 또 다른 특권이 커리어 변화에 대한 시선이 상대적으로 수용적이라는 것이다. 회사에는 뭐든 배울 점이 있기 마련이다. 최소 6개월 정도는 맛보고 판단하자. 2-3년의 허송세월을 보내지만 않으면 된다.
더 나은 현실을 위한 행동강령은 마지막에 다루고, 우선은 "왜 직무와 다른 일을 하게 됐는가"부터 확인해보도록 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개인의 문제라기보단 회사라는 거대한 흐름에 거스르지 못한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서비스 기획으로 시작했지만 직무와 다른 일로 마무리했던 S사, 무엇이 문제였을까?
- S사는 글로벌 온디맨드 P2P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회사의 기본 골자인 "사고 싶은 해외 물건을 1번의 결제로 집 앞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는 이미 구축이 완료된 상태였기에, 사실상 서비스 기획업무가 회사 BM의 주된 업무가 아니다.
- "Paid광고 캠페인 관리, 수출물류, CS응답, 운영업무"와 같은 업무들이 사실상 회사 BM의 주된 업무가 맞다. 회사가 돈을 벌고,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업무들이다. 직무와 관련된 서비스 기획 업무를 내 업무시간에 가득 채우려면, 회사 BM의 주된 업무들만큼 서비스 기획 업무가 지금 당장 왜 필요하고 어떤 기대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회사에게 어필했어야 했다. "내가 굳이 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 해결방안인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브랜드 디자이너로 시작했지만 직무와 다른 일로 마무리했던 M사, 무엇이 문제였을까?
- M사는 국내 온라인 마케팅&판매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회사의 기본 골자인 "금액을 지불하면 마케팅&판매를 대신해주는" 서비스에 디자인이 맡는 역할은, 냉정하게 말해, 크지 않다. 판매채널을 신경 쓰지 않는 것과 디자인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회사 BM에 끼치는 영향 자체가 다르다. 필자 역시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디자인이 중소규모 회사의 BM에서 맡는 역할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 "온라인 판매채널 관리, 사입재고 출고처리, 재고관리, CS응답"과 같은 업무들이 결국 회사 BM의 주된 업무다. 직무와 관련된 디자인 업무를 내 업무시간에 가득 채우려면, 더 큰 규모의 회사에 입사했어야 했다. 회사의 BM과 방향성 속에 디자인 업무는 분명한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어야 했다. 회사 내 디자인이 창출하는 가치가 제한적인데, 억지로 디자인 업무를 고수하는 건 나와 회사 모두에게 좋지 않다.
앞선 얘기들은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껏 만나온 동료, 친구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고민에 대한 해결방안은 다양하다. 꽤 비싼 금액을 들여 커리어 변화를 도모하거나, 2nd Job으로 수익을 창출하거나, 비슷한 고민을 가진 커뮤니티 모임에서 얘기를 나누며 조언을 듣기도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안 좋은 해결방안은 회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한 채, 그저 서로 무시하며 지내는 것이다.
cf. Quiet quitting과는 다르다. 필자가 생각하는 quiet quitting은 회사, 동료들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quiet quitting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한다. 속이 텅 비었을 뿐.
교육 플랫폼의 온라인화는 이미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에서 시공간은 더 이상 배움의 제약이 될 수 없다.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온라인만 연결되면 나와 비슷한 직무로 일하는, 나보다 연봉이 높은,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기가 너무 쉽다. 그래서 문제다. 성공에 대한 후일담이 넘쳐나고 실패에 대한 후일담도 넘쳐난다.
cf. 급변하는 커리어 관련 홍수를 직격으로 맞은 건 90년대생이 분명하다.
어려서 마땅히 배운 게 없다 보니, 사회에 나와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배우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했을 뿐인데 3년 차에 5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주니어분들은 시행착오를 줄이시길 바라며, 필자가 생각하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공략법으로 글을 마친다.
01. 잘 모르겠으면 규모가 큰 곳으로 가자. 선택의 폭 자체가 넓은 건 기회가 맞다. 이왕이면 다양한 직군이 있는 회사가 좋고, 기왕이면 현금이 많은 회사가 더욱 좋을 것이다. 커리어 관련 문제에 대한 해답은 대부분 사람에게 나온다. 규모가 큰 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자. 스타트업 환상은 치우자
02. 잘 모르겠으면 물어보자. 누구한테? 친구한테.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물어볼 법한 지인들에게 모두 물어봤는데도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관련 직무 종사자에게 물어보자. 온라인만 연결되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많다. 페이스북, 인별, 링크드인에 올라오는 following한 사람들의 피드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외의 것들을 이용하라는 말이다. 얼굴도 모르고 사는 곳은 더욱이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보라는 얘기다. 거절과 무시에 대한 걱정은 커리어 시행착오에 대한 걱정에 비하면 현저히 작은 문제다.
여기까지 존잼 스타트업 스토리의 세 번째 이야기, 직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미정이고요. 오늘날에도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으니 조만간 새로운 주제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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