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사색
아이의 방학 때마다 세우는 계획 중 하나는 서점에 가는 것이다. 책의 힘을 믿는 엄마의 고집이 내포된 계획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굳이 대형 서점에 가려면 인근 도시로 운전을 해서 가야만 갈 수 있다. 서점 가는 것을 이벤트처럼 생각하는 게 의아할 것 같아 밝혀두는 것임.
10평 남짓한 동네 책방에 가도 딸아이와 한 시간 이상은 거뜬히 시간을 보내지만, 대형 서점은 훨씬 긴 시간을 머물며, 다양한 종류의 책에 흠뻑 젖을 수 있어 애써 시간을 내어 간다.
오늘 가기로 했던 서점은 반가운 곳이었다. 대형 서점도 사라지는 추세인데, 문화 복합 공간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 서점이었고,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북 큐레이션을 다양한 계층의 인사들로부터 추천받아 판매하기도 하고, 서가에 꽂힌 책들도 기존의 분류법으로 배치한 것이 아니라, 특정인이 찾아서 읽을 만한 책들을 분류하여 배치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가기 전부터 설레었다. 새 책으로 꽂힌 서가의 책 냄새를 빨리 맡아보고 싶었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는 전 날 잠들기 전까지도 어떤 책을 고르고 살지? 서점은 얼마나 멋지게 꾸며져 있을까? 주말이라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쩌지?
내가 사고 싶은 책이 없으면 어떡하지? 몇 권이나 살 수 있는지? 오만가지 상상과 걱정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눈 뜨자마자 서점을 가기 위한 목표 하나로 채비를 서둘렀다. 서점 나들이에 호들갑을 떠는 촌동네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드디어 도착한 서점은 입구부터 미술관 느낌의 포스가 느껴졌다. 아치형의 서점은 기존의 대형 서점과는 분명 차별성이 있어 보였다.
서점에 도착하자 남편은 아이 손을 잡고 서점을 거닐었다. 그는 아이와 책 보는 호흡이 없는 사람이지만, 기꺼이 아내를 위해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던 그의 배려다.
이내 아이는 아빠 손을 뿌리치고 나에게 달려왔지만. 읽고 싶은 책을 일단 사진으로 찍고, 도서관을 통해 빌려 읽을 수 있는 것은 따로 캡처를 해 두었다.
어차피 아이를 위해 책을 사고 나면, 내가 사고 싶은 책은 슬그머니 다시 제자리에 놓아둘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아이가 읽을 책을 고르려고, 아이와 자리를 옮겼는데 한쪽 벽면 전체가 문제집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고, 동화책은 문제집과 인기 만화 시리즈물에 밀려나 아주 작은 부분만 할애되어 있었다. 그 옆에 그림책으로 꾸민 공간이 있었고, 앉아서 읽을 만한 장소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 부분은 참 좋았지만, 아쉬운 점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일단, 그림책도 동화책도 익히 유명한 책만 서가에 있었다. 더 다양하고, 더 새로운 책을 항해하기 위해 이곳까지 달려왔건만.
책에 관한 좋은 기억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이 굳건한 엄마로서 아이에게 티는 내지 않았다. 곳곳에 책 보다 비싼 팬시가 많은 것도 거슬렸다. 책에 집중할 수 없도록 배치된 갖가지 팬시들도 마음에 걸렸다.
책을 사러 가서는 스티커도 사고, 예쁜 소품도 사게 되는 구조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책도 구매하고 팬시도 구매했다.
아이에게 오늘의 나들이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을 오늘만 들른 것도 아닌데, 오늘 유난히 거슬렸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 좀 읽어라.”라고 다그치지만, 아이들의 시선에는 문제집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문제집은 책이 아니잖나. 정작 문제집을 풀어야 되는 주체인 아이는 문제집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몇몇 어른이 문제집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만화 시리즈 책을 읽거나 장난감이 될 만한 아이템을 찾아 서점을 돌아다녔다.
책이 있는 곳에서 정작 책을 볼 수 없는 구조라는 생각이 가닿으니 빨리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책방은 아이와 내가 데이트를 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 책방은 엄마와 데이트하기 딱 좋은 장소이다. 우리 동네 책방은 그림책과 고전과 책방지기님이 선별해 놓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한 번 검증을 거쳐 서가에 진열된 책이라서 의심의 여지없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책 편식과 취향의 것이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양질의 책이다. 독립출판물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책들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특별함도 있다. 잠시 고민을 하기도 한다. 10% 할인율이 적용되는 혹은 쿠폰 혜택이 있는 인터넷에서 구매할까 하고. 그러다 그가 추천한 좋은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은 없다.
얼마 전 서울에서 그림책 책방을 운영하는 대표이자 작가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한 분이 질문을 했다.
“굳이 동네책방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매하고, 할인율도 적용해서 싸게 살 수 있는데.”
그분이 대답하시길,
“그렇죠, 정가를 주고 사야 하고 하물며 택배비도 있어요. 안 사셔도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도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아마도 책방 하시는 분들은 큰돈을 벌려고 이 일을 했다기보다는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분들일 확률이 높아요. 책을 좋하는 분들이죠. 그래서 좋은 책을 팔고 싶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요. 좋은 책을 선별해서 판다는 전문성이 경쟁력이 될까요? 그 책방만의 색깔이 뚜렷하죠. 알고 찾아오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정가를 주고서라도 찾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하하하 저도 어렵습니다.”
나는 동네책방이 사라지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곳을 지켜내기를 응원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세상이 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동네책방이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바라고, 좋은 책을 나누려 하는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 든든함이 있다.
대형 서점이 없어져야 하는 것처럼 읽혀 지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곳을 지켜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고, 그것을 유지하고 지켜내고자 팔아야 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며, 멋지게 큐레이션 된 책들도 분명 많다.
단지, 아이를 키움으로 인하여 보이는 것들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책 읽는 아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려는 어른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여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가는 길에 유혹이 너무 많은 세대들이다. 스마트한 세상에 스마트한 기계 때문에 아이들이 책을 보고, 글을 읽기가 힘들다. 세상에 예쁜 것들, 멋진 장난감이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으니 책으로 가는 길목을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