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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주 Sep 26. 2022

어른은 안 우는 줄 알았습니다.

쓸쓸한 사색

결혼기념일에 결혼식에 다녀왔다. 특별한 우연이랄 것도 없지만, 결혼은 한 생의 가장 큰 이벤트인 것은 분명하다. 결혼식은 대놓고 많은 이 앞에서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화려한 드레스와 흠잡을 데 없는 화장을 한 신부와 신랑이 예뻐 보여 미소가 새어 나오면서도, 걱정이 앞서는 불편한 마음이 자꾸 머릿속을 맴맴 돌았다.


시고모님 딸의 결혼식이었다. 그로 인해 남편은 축의금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내내 결혼식장 밖에서 분주했다. 나는 딸아이 손을 잡고 어머님을 따라다니며, 일면식 없는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를 했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인사는 절반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다. 그분들도 나도 인사를 나눴지만, 언제 어디서 만나도 모를 분들이다.


결혼식이 시작되었고, 시고모부님이 귀하게 키운 딸의 손을 잡고 무대의 끝에서 긴장한 얼굴로 서 계셨다. 시고모님과 시고모부님은 자식이 생기지 않아, 결혼 후 한참이나 지나 어렵게 딸을 낳았다고 한다. 아가씨의 남자 친구를 꽤 오랫동안 반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둘은 연인으로 발전해 연애기간도 길었다. 결국 단호했던 고모님이 백기를 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저런 결혼과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서였을까? 나 역시 딸아이 하나만 키우고 있어서였을까? 나의 감정이입은 자꾸 고모님의 마음에 꽂혀 있었다.


신부 입장을 하고, 고모부님이 신랑에게 딸의 손을 건네주는데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박수를 치고 웃으며 봐도 될 것을 나는 슬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울컥했다. ‘그냥 딸의 손을 놓지 말아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내 딸도 아닌데 주기 싫은 마음이었다.

뭔가 숙기 없고, 순수해 보이기만 한 청년이 내 눈에도 어린아이처럼 느껴져서 ‘이 결혼 반댈세’라고 할 뻔했다.

다행히 나의 손은 그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격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소탈한 성격의 신부는 내내 웃으며, 결혼식을 즐기려 애쓰는 듯 보였다. 결혼 선언문이 끝나고 양가 부모님의 덕담이 끝 나갈 즈음 씩씩하기만 하던 신부는 참았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눈물이 터진 신부를 보며, 고모님은 울지 말라고 웃으며 손 하트를 띄워 보내셨다.  차라리 눈물을 보이셨다면 들 슬펐을까? 나는 그 순간 신부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아버렸다. 누가 보면 친언니가 우나보다 했을 것이다.

옆에서 딸아이는 “엄마 또 울어?”라며, 이제 잘 우는 엄마를 포기한 듯 쳐다보며 손을 잡아 주었다. “엄마는 너 시집 못 보낼 것 같아.”라고 말하며 또 펑펑 울었다. 그러자 딸아이는 “시집 안 간다”라고 말해주었다.


이제 딸아이는 잘 우는 엄마를 알고 있다는 듯 태연하다. 얼마 전 진도에 여행을 갔을 때, 팽목항에 잠시 들렀던 적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던 날부터, 나는 나의 일상이 걱정되어 문득 떠오르는 그날의 잔상이 힘들어 외면하고 지냈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잊지 않았지만 외면한 채 살았다. 진도까지 와서는 아니 갈수 없어 들르게 되었는데, 태풍 의 영향권에 들어서 있던 험한 날씨였다. 날씨 탓이었는지 분위기가 음산했다. 팽목항을 거니는데 세월만큼 묻은 흔적들과 아직 기억 속에 발길을 찾아 준 이들의 흔적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을 쏟았다. 그때도 딸아이는 “엄마 또 울어?”라고 했다.


나는 어릴 때 어른은 안 우는 줄 알았다. 그리고 정말 엄마가 우는 모습을,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어른은 이미 세상을 다 알아서 울 일이 없는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안 울었던 게 아니라 들키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세상은 알면 알수록 울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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