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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Jan 15. 2022

친구에게

그동안 잘 지냈어? 이제 곧 2월이 다가오니 네 생각이 나서.

시간이 참 빠르다.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해가 바뀌었고 벌써 새해 첫 달의 반을 넘겼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망과 기대로 열었을 새해를 나는 사실 조금 엉거주춤하게 시작했어. 흐린 구름 같은 것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내 안에서 이리저리 떠다녔지. 물론 이곳의 날씨도 무척이나 흐렸고 비도 오고 그랬어. 그 틈을 열고 막연한 두려움이 왔다 가기도 했지. 올해도 잃는 일이 생길까 봐.


2021년은 나에게 조금 신비한 해였던 것도 같아.

너와 그렇게 헤어지고 세상의 모든 물이 다 마르게 될 것만 같았어. 썰물이 끝도 없이 우리 반대쪽으로 물을 밀어내고 바다를 바싹 마르게 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파도가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더라. 물고기와 물풀과 조개와 반짝이는 것들이 뭍을 다시 끌어안았어. 날카로운 것이 풀을 베어낸 자리에 새로운 풀이 자라나듯이 말이야. 너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한동안 쓸쓸하고 외로웠는데, 얼마 후 우연히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어. 신기했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너에게 했던 것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말이야. 나를 숨기고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말이야.


여름에 한국에 가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너희 가족을 만나는 일이었. 내가 보지 못한 너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그들 앞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지 조금 염려가 됐었어. 여름의 햇살 때문인지 너희 가족의 슬픔은 조금 희미해져 보였어. 물론 나는 제삼자로 느끼는 거니깐 실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래도 속으로 나는 다행이라고 안도했어. 언니도 너희 부모님도 여전하신 것 같았고, 다만 아이들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지. 이제 사춘기 가까워진 너희 아이들에게 나는 선물을 준비했고 용돈을 받은 첫째가 조금 기뻐하는 것 같아 나도 기뻤지. 계속 여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너희 가족을 만나고 온 일이 그 해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슬픔이 조금 옅어졌기 때문이야.

ⓒ새벽두시

한국에서 너와 마침내 작별 인사를 하고 와서 내 인생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꼈어. 사람을 조금 더 용서하고 덜 미워하게 되는 것 같았어.

너희 언니와 자주 이메일을 하고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어.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마음은 힘이 무척 세다는 것 뜨겁다는 것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지. 네가 우리 곁에 있었을 때보다 우리는 너를 더 자주 생각하게 . 네가 이곳에 없어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멈추지 않는 것 같아. 그 마음과는 작별하지 않을 것 같아. 그러니 우리는 걱정 말고 너도 그곳에서 자유롭게 잘 지내길 바라. 나에게 삶의 충만함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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