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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유리 사과

by 가을



보이는 공장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소망은 구슬이고 사랑은 별사탕이며 정의는 상자다

베이지 색의 깔끔한 공장 복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주인들이 빼곡히 액자에 걸려있다

루이스는 녹색 앞치마를 두르고 하늘색 작업복을 입은 채 그 앞을 지나치며 이름들을 중얼거린다

월요일 아침, 가장 중요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은 권리를 주어 담는 것이다

코끼리가 들어갈 만한 바구니에 하루치의 창조가 쌓이고 바구니 안에는 유리로 된 창작물들이 들어있어 그 자체로 신성하다


그런 그의 눈에 밟히는 권리가 있다

갓 태어난 듯 발갛게 볼을 물들이고 꼬아진 순수한 실을 붙잡은 유리사과

복도의 끝 액자에는 어린 소녀의 앳된 얼굴이 있었다

그는 유리사과를 꺼내 두 손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소녀가 종이에 연필로 사각사각 썼을 때부터 만들어진 사과는 이제 두 손에 꽉 찰 만큼 자라나 있었다

소녀는 운율에 맞춰 시를 짓고 바람이 나뭇잎을 띄우는 춤에 맞춰 영상을 촬영한다

필름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그 잔상을 유리 안에 남겨놓는다


루이스는 바구니 안의 유리 창작물들에 인식표를 붙이는 작업을 한다

단 하나도 같은 건 없으며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머니 안의 공장 설명서를 꺼내 들어 다시 한번 읽는다

가장 큰 규칙 10번: 우리는 고유한 창작을 소중히 하며 표현을 지키며 존중한다.

종이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루이스는 유리 사과를 흰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닦는다

소녀의 시와 영화는 다른 사람의 유리가 되지 않도록 지켜질 것이다

그는 소녀의 유리 사과가 커져가며 무르익고 빛난 채로 존재할 모습을 확신하며 유리 사과에 오늘의 인식표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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