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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와 고래의 상관관계

벼락이 치는 순간 온몸의 힘을 빼기란 어려운 일이다

by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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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이 치는 순간 온몸의 힘을 빼기란 어려운 일이다. 언제 내 앞으로 올지 모르는 번쩍임이 머리 위를 울릴 때는 숨을 내쉬기도 잊을 테니까 말이다. 번개는 언제나 자기 몫을 한다. 작은 움직임도 빠르고 강하게 내리친다. 때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듯 무작위로 꽂히는 번개를 보기도 한다. 때로 번개는 지구상의 가장 한심한 마음을 정확히 조준한 듯 무시무시한 경주마처럼 달려오기도 한다. 내 앞으로 어떤 번개가 내려칠지 모른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을 때 벼락이 내 코를 때릴 수도 있겠다.


정당하여 거룩한 분노가 아닌 이상 화내는 건 건강에 안 좋을 테다.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조각난 사이를 매듭짓는 노력이 이후에 더 필요하고 화를 속으로 삭이면 분노는 소멸되기보다 쌓인다. 아마 가장 좋은 건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화가 나는 원인과 화가 나는 반응의 회로를 끊으면 된다.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보는 거다. 적어도 나는 세상에 생명이 달린 응급 상황 외에 급박하게 해야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잠시 서서 1초, 2초 생각해 볼 시간은 있어야 한다. 1초가 지나면 미래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과거가 된다. 현재 흐르고 있는 시간은 저 높은 산 위에서 더 빠르게 흐른다. 정확한 시간의 원리란 없는 것일 수도, 시간의 흐름을 정의할 인간의 능력이란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급한 일은 없는 거다. 갈비뼈를 열었다 닫으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러니 벼락이 쳤다고 도망가는 대신 눈앞의 번개를 받아들인다. 나는 결국 인간이다. 어디에 언제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태어날지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태어난 인간이다. 벼락이 치는 순간 온몸의 힘을 뺀다. 추운 겨울 한 움큼씩 내리는 함박눈이 누군가의 고백을 담은 사랑이라면 그토록 빠른 빛을 지닌 채 달려서 한 걸음에 폭발을 일으키는 번개가 사랑이 아닐 수가 있나. 정신이 번쩍 들고 죽었다 새로 깨어나고 마음이 통째로 흔들리는 애정이다.


나는 나 자신을 믿었고 내 힘으로 닻을 올렸습니다

태풍이 쳐도 책에는 벗어나는 법이 나와있었으니 나는 내 손으로 미래를 썼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몰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바다에 버리는 쓰레기처럼 가라앉고 가라앉아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를 버려두었습니다


그때 번개가 쳤습니다

정말 강한 번개가 하늘을 찢고 바다를 가르고 내 심장을 움켜쥐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란 걸 느낄 때

눈동자의 색이 다른 고래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닷속의 누구보다 온유하고 강한 고래는 내 앞으로 와 눈을 맞추었습니다


다시 번개가 쳐 내 눈앞을 빛으로 산산조각 냈습니다

나는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번개를 볼 때 온몸에 힘을 빼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랑은 때로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의 가장 약한 자에게서 일어나곤 합니다

나는 번개를 좋아한다 말할 수 없지만 그를 친구라 부르며 무모함에 입 맞추며 용기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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