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각화 Jun 01. 2024

바다

치유의 바다, 때로는 내 마음이 보인다.

젊은 날, 삶에 지쳤거나 마음이 요동치던 날들이면 찾아가고 싶고, 그러다 시간이 허락하면 달려갔던 곳이 있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부족했던 날들. 

자기 성찰의 시간 게을리고, 책이든 종교의 힘이든 성찰을 하기 위한 노력의 부재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지금도 어쩌면 그 연장선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힘들면 달려가고 싶어 진다. 


모든 것을 떨쳐버릴 수 있는 바다로.






바다 일렁이는 잔 물결을 늘 품고 있다.


고요한 바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면 움직임 없이 아름다운 바다의 빛깔만을 뽐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는 늘 잔잔한 잔물결이 일렁인다. 마치 평화로운 날의 마음처럼 고요하지만 잘잘한 감정의 물결들이 계속 움직이.


한 가지 마음으로만 넘어가는 날은 없었다. 하루 안에도 여러 감정들이 오가며 흔들리고, 순간 뻣뻣하게 돌덩이처럼 굳은 마음이 생겼다가도, 그 마음의 상태가 계속 유지되지 않는다. 작은 저 물결 하나하나가 나의 섬세한 감정들 인양 계속해서 바다의 물결은 일렁이며 균형된 박자를 맞추고 있다. 아주 평화로운 날의 내 마음처럼.


그러다 어느 날은 고요했던 바다가 성을 낸다.

거친 물결을 일으키며.


화나고 괴로움 그득 들고 왔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꺼번에 다 토해내듯 칠게 일렁인다.

지침의 표현일까.

바다의 괴로움의 표현일까.


바다에 힘든 감정을 들고 와서는 내다 버리듯 하는 것은 나만이 얘기는 아닌 듯하다. 주변의 지인들도 곧잘 말한다. 갑갑해서 바다에 다녀왔다고. 또는 바다에 가고 싶다고.


현실을 반영하는 많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어떠한 갈등이 있는 상황이면 극 중 인물들의 대화 속에 이와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바다 갈까?"

"바다가 보고 싶네."

"나, 바다 좀 데려다 줄래?"


극에서 인물들은 바다 앞 도착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울부짖거나, 차디찬 바다로 돌진해 달려가 풍덩 빠지기도 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는 마치 바다에 감정을 내다 버린 듯 평정을 찾는.


극 중의 인물들처럼 답답한 마음에, 화난 마음에, 우울한 마음에 도착한 바다. 그 바다 앞에서 나는 극 중의 인물처럼 극적인 효과를 내지 않는다. 그저 아무런 말없이 바다 바라본다, 조용히. 저 멀리 수평선 끝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그 끝까지.


그렇게 바라만 봐도

지쳤던 마음과

분노했던 마음,

우울했던 마음까지도

물결에 다 쓸려나다.


평화로운 바다는 조용히 나를 달래주며 다독여줬고,

거친 바다는 내 맘을 안다는 듯이 같이 화를 내준다.


위로가 필요할 때, 말없는 토닥임이 위로가 되어 힘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나보다 더 흥분해서 속이 후련하게 거친 언사를 대신 퍼부어주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그 통쾌함에 힘을 얻듯이, 바다는 평화롭게 토닥여주고, 거칠게 포효하며 위로를 해다.


그리곤 조금씩 조금씩 밀려들어와서는 속마음 다 안다는 듯, 갖고 있는 온갖 시름을 끌어안고 깊은 바다로 쓸고 나간다.



생각해 보면 바다를 찾는 모든 날이 힘든 날은 아니었다.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마음 가득 들뜬 상태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면 잔잔한 물결은 들뜬 흥분을 가라앉혀주고, 내 마음과 다르게 성난 파도와 마주하는 날은 얼마나 화가 나서 저럴까 파도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과한 상상력을 동원해 파도의 마음을 읽어보면 나도 지쳤노라고 화가 났노라고 거칠게 큰 물결을 일으키며 울부짖는 것처럼 보인다. 높은 파고를 일으키며, 모든 걸 집어삼킬듯한 모습으로.




때로는 내 마음이 바다에 투영되어 느껴질 때도 있다.


잔잔한 바다를 보며

'오늘 내 맘이 너와 같다. 너처럼 평화로워, 그래서 반갑다.'


높은 파도와 거친 물결을 바라보며

'네 모습이, 내 맘 같다. 터질 것 같아 왔어. 포효하고 싶어 왔어.'


바다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양 때로는 반짝였고, 때로는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대신 울부짖어 주었다.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장난과 착각.


그럼에도 바다가 품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정을 찾고 과격한 마음이 사라진 후 서서히 마음 깊은 곳까지 잔잔한 바다의 모습을 닮은 평화로움찾아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치유.

바다가 내게 해 준 것은 치유다.

바다는 그렇게 나를 치유해 주었다.


감정을 내다 버린다는 것, 나를 보듬어준다는 것. 이런 것들은 나의 생각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또는 학창 시절 힘들면 나를 보듬어주는 사람을 찾아 나섰듯, 나의 푸념이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다는 걸 알고부터, 나의 고민은 나의 고민일 뿐이라는 걸 알고부터, 말없이 들어주고 말없이 안아주는 바다를 찾아 나섰던 것 같다. 그 치유의 힘을 얻기 위해서.




내 마음의 깊이를 나는 모른다. 어느 정도 깊은지.

내 마음의 넓이 또한 모른다. 어느 정도 넓은지.


바다만큼 넓어지고 바다만큼 깊어지는 것은 바랄 수가 없다.

그리고 화난 바다처럼 무서운 마음을 가질 용기도 없다.


다만, 바다처럼 마음을 다스리며 살고 싶다.

때로는 성난 파도로 몰아치다가도 이내 그 성난 파도를 가라앉히고 잔잔한 바다의 모습을 갖추듯,

화나는 마음을 잔잔하게 정리할 줄 알고, 수면아래로 거친 마음은 담그고 잔잔한 마음으로 평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바다는 그렇게 나에게 있어 치유를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며, 평정하는 마음을 가르쳐주는 고마운 스승과 같다.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상태의 내 마음은 네 명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마음이었을 때라 생각한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해하고자 했던 깊은 마음,

아이를 품는 마음에 있어 최대한 넓은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는 엄마의 마음.

부족하나마 조금씩 나의 마음이 점점 나의 어머니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다.

깊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던 어머니의 마음을.


어머니 마음.

바다.


깊이를 알 수 없고

넓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어머니의 마음을 바다로 표현한다면, 그조차도 부족하지 않을까.


나는 안다

너보다 더 깊은 존재를


나는 안다

너보다 더 넓은 존재를


너는 알까

너보다 더 깊은 존재를


너는 알까

너보다 더 넓은 존재를


깊고 깊어 깊이를 알 수 없고

넓고 넓어 넓이를 알 수 없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


아버지

나의 아버지


                               ...  by 보각화



이미지 출처 : https://www.pexels.com/                   

                    

이전 04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