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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각화 Jun 04. 2024

하늘

매일 바라보는 곳. 그럼에도 닿을 수 없는 곳. 늘 내려다보는 존재.

살며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눈으로 직접 바라본 가장 큰 것.

너무 커서 내가 바라보고 있는 동시간에 같은 하늘의 모습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바라다볼 수 있는 것.


지구의 절반.

하늘.


지구를 벗어나 나의 눈으로 직접 우주를 보는 날이 온다면, 그날 이후에는 가장 큰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겨울철, 집에서 바라보는 동트는 아침
여름철, 집에서 바라보는 아침의 하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다. 꽤나 자주 올려다본다. 특히나 매일 아침 하늘을 살피는 것은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아침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그날의 날씨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하늘빛, 구름의 양, 구름의 색, 그리고 강이 가까이 흐르고 있어 안개 끼는 날이 많기에 안개가 끼었는지도 자주 살핀다. 새벽안개가 덮인 날은 걷히고 났을 때 맑은 날이 올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날씨를 중요시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님에도 날씨를 살피는 것은 날씨가 기분을 움직여서 인 것 같다. 하늘이 맑은 날은 괜히 기분도 맑고, 구름 낀 날은 기분도 가라앉으며 차분해진다. 비가 오는 촉촉한 날은 마음도 촉촉해진다.


맑은 날은 빛의 씨앗이 심어지는 것이라는 박노해 님의 <오늘의 날씨> 시의 구절처럼, 날씨는 '날의 씨앗'. 그러함에 맑은 날씨는 맑은 마음씨로, 맑은 말씨로 이어져 좋은 인연의 씨앗을 만들어가는 날이 되었던 것 같다.  맑은 날의 씨앗을 심는 것은 타인을 위하는 것 같아도, 나 스스로를 잘 가꿔나가는 자양분으로서의 역할을 해주었다. 힘들어도 감사와 행복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나에게 있어 하늘은 그리운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언니가 있는 곳.


소설 혹은 영화 속의 이야기이지만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그 말을 어릴 적엔 믿었었다. 지금은 믿는 건 아니지만 심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며 위안을 삼는다.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휴직을 하셨었고 그러다 그해 겨울 돌아가셨다. 나의 꿈을 키워주셨었고 사람은 배워야 하는 거라고 어린 나에게도 늘 말씀을 하셨었다. 살아계셨다면 90이 넘는 연세이신 아버지. 전쟁 직후였던 그 시대에 법대까지 졸업하실 만큼 없는 가정에서도 배움의 가치로움을 아셨기에 늘 열심히 노력하셨고, 항상 책을 가까이하셨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의 어린 나의 눈에도 가득 책이 꽂혀있던 아버지의 책꽂이가 있었고 아버지의 작은 앉은뱅이책상 위에는 책들이 놓여있었다. 


조용하게 사춘기에 들어갔던 중학교 때부터 속상한 날이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버지가 그곳에 계시는 것 같았고, 내려다보고 계시는 것 같았다. 지금에 와 어른의 눈으로 바라다보면, 어쩌면 이것은 아버지의 부재로 나타난 정서적 불안정한 모습 혹은 결핍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늘에 계실 거라는 생각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반짝이는 저 별이 아버지 아닐까, 죽으면 별이 된다는데, '아빠, 들려요?' 하며 말을 했었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반짝이는 별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심리적인 안정과 고민하고 있던 고민들을 털어낸 후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 5월 23일(음력 4월 16일)


지난달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둥근달이 보였다. 날짜를 보니 보름에서 하루 지난날이었지만, 눈으로는 보름달인가 싶을 만큼 둥글었다. 옛날의 습관처럼 그날도 하늘을 보며 아버지를 그렸다. 그리고 작년에 떠난 언니도 같이 그렸다. 어린 그날엔 그리움 그 이상의 간절함과 서글픔도 담고 바라봤다면 지난달 그날엔 추억과 그리움을 담고 바라봤다. 둥근 달님 옆, 사진에는 담기지 않은 반짝이던 작은 별들이 아버지이고 언니 같은 느낌이었달까. 함께 담소를 나누며 놀고 계시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살포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운 아버지와 언니가 머무는 곳. 나에게 하늘은 그런 곳이다.

눈으로는 늘 바라다볼 수 있지만 아무리 손을 주욱 뻗어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닿을 수 없는 곳.




하늘에 늘 아버지가 계신다고 생각을 했기에 살아오며 내려다보시는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의 눈은 가릴 수 있어도 하늘과 땅은 다 알고 있다고. 나에게 있어 하늘은 아버지셨고, 땅은 어머니 셨기에 저 말씀이 꽤나 가볍지 않았었다. 


양심

약속

다짐

행동


자녀들을 키우면서 힘들어 지치다가도 일어서고 꾀가 나서 드러눕고 싶다가도 다시 일어섰던 것은 자녀들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함도 있겠지만,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 아래 부끄럽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 처해진 환경 속에서 부끄럽지 않게 단단한 마음으로 잘 살아왔노라고 지금도 그렇게 걸어가고 있노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날들이 많다. 그러한 다독임이 다시 나에게 에너지로 흡수되어 나를 일으켜주는 힘이 되는 것을 잘 알기에. 


나의 건강이 더 무너져 다시 흐트러지는 날이면 아마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을 거다. 하늘은 내게 그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아버지의 가르침처럼 배움의 가르침. 종이나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 속에서 배워야 하는 가르침. 스스로 성찰하며 내면을 키우라는 가르침.


나의 마음의 소리 

사람대 사람 

단단한 내면

겉으로 뱉어내는 말 그리고 듣는 귀

말뿐이 아닌 행함  




하늘을 바라보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내 삶이 꺾였던 20대의 그날에. 내가 운전하던 차량이 폐차가 될 만큼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났던 그날에는 하늘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늘이 내 머리 위에 있는지조차 잊었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내려다보신다고 일어서라는 내면의 소리도 없었다. 진흙탕이었다. 그날에는 내가 살아있는 것이 감사인 것을 몰랐었다. 그냥 원망했다. 나의 의지를 앗아간, 꿈을 앗아간 만취 차량의 운전자를. 


내가 합의하지 않았다면 옥고를 치렀을지도 모를 그 사람. 누군가의 아버지. 그래서 용서했다. 그래서 합의를 했다. 누군가의 아버지라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떠올랐고, 저 사람도 누군가의 하늘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용서를 했다. 그것을 내가 앗아가서는 안되니까. 그리고 살아있는 것에 감사를 했던 것 같다. 비록 긴 시간 동안 마음은 텅 빈 상태로 살긴 했지만 조금씩 나를 바라보고 몸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늘은 언제나 내 머리 위에 있다. 언제나 올려다볼 수 있다. 그리고 하늘은 내가 보지 않아도 언제나 내려다본다. 나만이 아닌 모든 것을 내려다본다. 예기치 못한 오해의 시간을 지날 때는 생각을 한다. 하늘은 아시겠지. 그랬다. 늘 하늘은 아셨고, 오해는 이해로 풀려간다. 


하느님이나 신에 대해 잘 모른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배워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불자 셔서 불경은 접해봤었고 내면의 성찰을 위해 사경은 해본 적 있지만 그렇다고 불교 신자도 아니다. 


내가 말하는 하늘은 하느님이나 신을 말함이 아닌 말 그대로의 하늘이고 그곳에 계신다고 여기는 나의 아버지를 포함한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 

나에게 있어 하늘은 그리운 사람들이 머무는 곳임과 동시에 부끄럽지 않은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잡아주는 존재, 그 큰 가르침을 주는 존재다.


2024.03.14 18시 58분




대문 사진 출처 :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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