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각화 Jun 11. 2024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진리.  물처럼 유연한 사고로 살아가자.

사람 몸의 70%를 차지하고,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며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아주 귀하고 소중필수 요소인 물.


'물'하면 귀하다, 소중하다, 꼭 필요한 것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배움을 통해 고 있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초등학교시절 배웠던 물의 성질, 어떤 모양, 어떤 크기의 틀에 채워 넣느냐에 따라 모양이 갖춰질 실제 물의 모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소하면서도 사소게 여겨지지 않는 진리.


무색, 무취, 무미

색이 없고, 향이 없고, 맛이 없는 물.

만질 수 있지만 어떤 모양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물.


'물'이라고 했을 때, 딱히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물이 갖고 있는 성질들을 통해 삶을 빗대어 배움을 얻.


번에 물에 대한 각정리와 글을 써보면서 노자의 사상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동양의 철학자 노자의 말씀에는 물에 대한 좋은 말씀들이 많았다. 노자는 '무위자연' 사상으로 삶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을 하였는데, '무위자연'사상이란 사람은 우주의 근본이며, 진리인 도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순리대로 살아가는 그것이 진리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나의 막연한 생각이라고 여겼는데, 아마도 이것은 과거 학교의 교육을 통해 배우고 접했던 철학자의 사상이 더해져 보다 구체화된 생각으로 릿속에 담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서 물은 꼭 필요하다. 그러하기에 물은 싹을 틔우는 식물과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생명수이다. 고여있는 물이 되었든, 하늘에서 내려주는 비를 통해서든 물을 섭취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주말농장으로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비가 오지 않는 한여름, 며칠만 걸음 하지 못해도 갈증으로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식물들을 본다. 때를 놓치지 않고 다행히 걸음 하여 물을 흠뻑 주고 나면 이제야 살겠다는 듯 식물들이 금세 생기를 찾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나의 작은 행동이 얼마나 가치로운 행동인지 알아챈다.


자연이 해결해주지 못한 것을  기쁨.

식물들에게 생명수를 뿌려주고 얻는 그 기쁨은 도로 나에게 생명수처럼 흡수되어 나의 생기를 북돋운다.


생기를 찾는 작물들의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혹여나 놓칠 뻔했던 물의 공급, 식물들에게 생명수를 뿌려주고 난 뒤의 얻음은 생명수를 뿌려줄 때 느낀 기쁨 그 이상의 더 크고 값진 것을 얻게 된다. 그렇게 성장을 이어간 작물들은 무공해의 먹거리를 고스란히 내게 내어주니까.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에게 생명수인 물.

생명수라고 해서 그 물의 모양이 심장 모양일리 없고, 별의 모양일리도 없는 것이, 생명수도 여전히 물이 갖고 있는 성질 그대로 형태가 없다. 바가지에 담면 바가지에 담긴 물, 물조리개에 담면 물조리개에 담긴 물, PT병에 담아 뿌리면 병에 담긴 물, 손으로 끼얹으면 손에 담긴 채로의 물. 그렇게 물은 갖고 있는 성질 그대로 서로 다른 형태의 물체에 담겨 그 그릇의 모양을 따른다. 이것에서 자연스럽게, 사고의 유연함을 배운다. 물 흐르듯 생각하고 담길 때는 담기고, 쏟아내면 쏟아져 다시 흐르는 물이 되며, 필요한 곳에 필요한 용도로 쓰임이 되는 물.


유연하게 담기고 쏟아지면서도 자신의 성질은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물인 것처럼, 필요에 따라 다양한 그릇에 담길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사회 안에 서로 다른 조직과 관계 속에서 사고하며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익히며 살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라는 중심은 그대로 나일뿐 변하지 않는다는 것.


쩌면 이것은 작은 회의 조직 가정 안에서도 적용되는 이치인 것 같다. 가정 안에서도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언니로, 동생으로 여러 관계를 맺으며 거스름 없이 흐르되 유연한 사고로 응해야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니까.


유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 마치 다양한 그릇에 담기지만 그대로 물로서 가치를 지니듯, 유연한 사고를 갖고 살아가지만 나로서 가치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물은 내게 그러한 삶의 방식을 눈앞에서 매일 가르쳐주고 있다. 다양한 모양의 그릇과 컵에 담기면서 말이다.




물은 흐르는 방향을 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역행하지 않는다. 그러한 당연한 진행을 순리로 받아들인다. 고인 물을 흐르도록 하려면, 새로운 물고를 트거나 물길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마땅한 력을 필요로 한다.


낮은 곳에 고인 물 흘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높은 곳 땅에 고랑을 만든다 하더라도 물의 높이보다 낮은 고랑으로 파지 않는 이상 물러오지 않는다. 그대로 고여있을 뿐이다. 더 깊고 더 낮게 고랑을 내야 물 르고, 렇지 않으면 둑을 대는 방법도 있겠다. 다른 곳으로 흐르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설계하고 계획한 대로 물길을 내거나 둑을 세워 물길을 내는 거다.


삶도 그렇지 않은가. 삶을 살아가며 새롭게 나아가려면 고여있는 물에 물고를 트듯, 안주하고 살던 삶에서 마음도 새롭게 내어야 하고 새로운 계획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고 덧대며 나아가야만 변화가 일어난다. 가만히 아무런 행함이 없으면 제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다. 그대로 고인 삶이 될 뿐이다.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뭔가 변화하고자 하는 행함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변화를 맛볼 수 있다. 물이 고이지 않고 흐를 수 있게 고랑을 파는 정도의 노력이라도 있어야 물이 흐르게 되듯이...


물의 성질로 삶을 빗대어 바라보며 좁은 시야의 소견들을  정리하고 기록하다 보니 꼬리 물듯 생각이 이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사고를 정리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한계 또한 느다. 더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보고 싶. 그 힘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며, 그 노력은 책과 좋은 말씀들과 자아 성찰을 통하면 될 것인지 자문자답을 해본다.




≪자연, 너를 통해 배운다≫의 연재를 이번글로 마무리합니다. 조용히 연재를 하지 않고 시간이 되었을 때 기록하여 연재하면 될 일이지만, 저와의 약속이 정해진 날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은 피하고 싶은 마음에 이번 브런치북의 연재를 일차적으로 마치고 차후 후편 형태로 이어가 볼까 해요.


많은 자연 속에 저의 눈과 생각에 담겨, 브런치북을 채우고 싶었던 몇 가지의 자연 항목이 더 있기도 하여,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재를 잠시 멈추고, 길지 않은 시간의 틈 이후에 기록하지 못했던 자연을 바라보는 저의 생각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에도 많은 관심으로 읽어주시고, 응원의 힘을 보내주신 작가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연재의 글은 멈추지만 작가님들의 글은 꾸준히 접하며 저를 키워나가는 힘으로 잘 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브런치북 연재 종결은 10편 이상이어야 가능하다는 브런치스토리의 안내글을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번복을 하게되었어요. 미리 찾아보고 종결을 말씀드렸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이런 실수를 합니다. 당분간 다른 일정들로 이동이 많아져서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 될듯하여 텀을 주려고 했던 것이 이리 되었습니다. 이대로 종결을 하지 않고 두었다가 이어서 연재하는 방법이 있기도 하겠으나, 한달정도의 텀을 둘 예정이었어서 그러기엔 쉬는 기간이 좀 길것 같습니다.  종결은 마치고 싶은 브런치북이라 두편을 더 넣고 종결을 하려고 합니다. 번복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넓은 마음으로 양해부탁드려요.


더워지는 여름날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한 날들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이전 07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