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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세상에 딱 반 발자국 앞선 기획

기획수용주기의 캐즘을 넘어서

by 모일자 Apr 03. 2025

우리는 종종 과거에 선구자적이었으나 실패한 사람/기술/제품을 보고 시대를 잘 못 타고났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앨런튜링이 1950년대 제안한 AI의 개념이 약 70년이 지난 요즘 드디어 제품/서비스로 구현되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이르게 1800년대 등장하였지만 약 150년이 지난 이후 빠르게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제품뿐만 아니라 많은 음악/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후에 비로소 빛을 본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가치를 생성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 당시에도 충분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가치는 비로소 다른 이에게 전달이 되고 수용되어야 비로소 빛을 냅니다. 그리고 가치의 생성과 수용까지는 많은 시간의 격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술의 기초 연구에서 상용화까지의 단계를 9단계로 구분해 나타내는 TRL(technology readiness level) 관점에서 보면, 분야마다 차이가 있지만 초기연구부터 상용화까지 짧아도 10년에서 길면 50년 이상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또한 기술적으로 온전히 준비가 되더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사회이기에, 인식/문화/제도/인프라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실제 가치의 수용 기간은 훨씬 길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만약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것 자체를 추구하고 만족한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만들어낸 가치가 세상에 수용되고 실행되는 것을 원한다면 가치를 언제 세상에 전달할지 언제 세상이 나의 가치를 수용할지 소위 영업/마케팅에 대한 감각이 필요합니다. 기술기반의 창업자가 실패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창업을 한다는 것은 가치의 수용을 추구한다는 선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언과 반대로 가치의 생성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기획을 한다는 것도 창업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빈틈을 채우는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 기획이기에, 기획을 한다는 것은 가치의 수용을 전재로 변화를 추구한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기획이 지닌 가치의 수용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타이밍입니다. 기획의 실무를 해보신 분이라면 기획이 돌고 돈다는 감각을 느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과거에 이슈가 되었던 것이 또 이슈가 되고 비슷한 해결책이 제안되는 것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비슷한 해결책이라도 그때는 안되었는데 지금은 수용되기도 합니다. 그때는 내가 그렇게 하자고 해도 안되더니 지금은 세상이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기획의 가치 수용을 기술수용주기(technology adoption lifecycle)에 빗대어 기획수용주기(planning adoption lifecycle)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최근에 전기차 캐즘(chasm)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기술수용주기에서 초기에 기술의 가치를 일찍 알아보는 얼리어답터까지의 수용(전체의 약 16%)에서 다수 수용자로 넘어갈 때는 단절이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기술/제품이 캐즘을 넘어가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비슷하게 선도적인 개념을 제시한 의미 있는 기획이라도 기획수용의 캐즘에 빠져 수용되고 실행되지 못합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기획자의 특성상 많은 경우 한 발자국 앞서서 기획합니다. 가치를 전달합니다. 일부 기획의 얼리어답터에게는 가치를 인정받지만, 대중에게 가치가 받아들여지지 못해 결국 세상에 수용되지 못하고 실행되지 못합니다. 캐즘에 빠졌습니다. 그가 생성한 가치는 실제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단지 그 의미가 받아들여질 타이밍이 아니었던 건 뿐이죠.


기획을 처음 할 때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의욕이 앞서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소수의 인원에게는 가치를 인정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실행되지 못하고 바뀌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지치지 말라고 계속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한 위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가치를 전달하는 타이밍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마 아직은 경험이 적어 타이밍을 알 수는 없지만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캐즘이 지나가 있을 거야라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딱 반발자국 앞설 때 기획수용주기에서 캐즘의 끝자락에 있을 때가 가지를 전달하는 최적의 시기입니다. 그보다 늦으면 소위 뒷북을 치며 터진 문제를 해결하는 기획을 하게 되고, 그보다 늦으면 지치지 말고 계속하라는 응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쉽게도 지금이 어디쯤인지를 알 수 있는 방안은 없습니다. 베테랑 기획자도 이번에는 너무 빨랐네, 이번에는 너무 늦었네를 느끼며 매번 틀립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에 딱 반발작 앞서서 가치를 전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시도해야지, 나의 상상대비 실제 지금이 어디쯤이었는지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차이를 빈번하게 느낀 기획자만이 점점 그 차이를 줄일 수 있고 기획수용주기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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