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빠지다 #6
1. 무모함과 계획
사진에 취미를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멋진 운해를 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대둔산으로 향했다. 이전에 서너 번 올라간 경험만 믿고 무턱대고 감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낮에 오르는 것하곤 확연히 달랐다. 빛 한 톨 내비치지 않는 어둠 속을 오르자니 암담하기만 했다. 나에게는 손전등조차 없었다. 카메라의 액정을 켜고,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하여 산을 올랐다.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가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날은 밝았고,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다 보니 날이 밝았어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바위와 수풀에 몸을 긁히면서 무작정 위쪽으로 향했고, 한참을 헤맨 뒤에서야 능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열 시를 넘어서 있었다.
계획과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절실히 느끼게 된 계기였다. 거의 헛고생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날 당장 마트에 가서 산행용 손전등부터 구입했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무 때나 기분 내키는 대로 가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자제해야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수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대둔산을 검색하고, 노트에 봉우리와 산길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새벽에 대둔산으로 향했다. 효율적으로 살지 못하면 한 번으로 족한 것을 여러 번 해야 한다.
2. 순간과 욕심
다시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비슷한 실수를 자꾸만 하게 된다. 가을날, 곰소를 지나면서 멋진 풍경을 보게 되었다. 벼가 노랗게 물든 논이 바다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래, 저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멈춰 서지 않았다. 우선은 정차할 공간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몇십 미터 걸으면 될 정차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차는 달리고 있었고, 우선 솔섬에 다녀온 다음에 와서 찍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계속 자동차를 몰았다. 한 시간 후면 해질 무렵이 되니까 더 멋진 빛이 될 거야, 라고 편하게 생각하면서. 그러나 솔섬에서 삼십 분만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금세 뒤로 밀려났고, 한 시간 넘게 머물렀다. 이미 해가 지기 시작했다. 다시 곰소로 왔을 때는 세상이 온통 깜깜해져 있었다.
이거다, 싶은 장면을 만나면 바로 찍어야 한다. 다시금 뼈아픈 후회에 잠기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사진뿐만 아니라 인생사가 그렇지 않은가. 이거다 싶은 순간을 놓쳐 후회하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인가.
어쩌면 이런 후회의 감정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싶은 허황된 욕심. 원하는 바를 막상 성취했을 땐 사실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을…….
3. 평정심과 순발력
어느 가을날, 노랗게 물든 들판을 배경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차가 노란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나서 차 안에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거닐고 있었다. 그때였다. 다다다다다…… 어디선가 중저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도로 왼편에서 할리데이비슨 이십여 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20여 미터의 거리였다. 황혼을 배경으로 아주 멋진 장면이 펼쳐졌다. 다시 만나기 힘든 순간이었다. 나는 서둘러 자동차를 향해 달려갔다. 차 문을 여는 순간 그들은 10여 미터 정도의 거리에 와 있었고, 카메라를 꺼내든 순간 그들은 내 앞을 쌩- 쌩-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손에 든 채 그저 멍하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 그래, 바로 이거야, 하고 생각하며 신나게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장비를 챙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앗, 하고 탄성을 내지르게 만드는 순간이 불시에 닥치기도 한다. 아, 조금만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렸어야 했는데…….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은 이미 지나가버린 뒤이다. 다시 한 번만 그 광경이 나타났으면, 하는 간절한 기대를 지니고 기다려 보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돌아서야 한다. 사진을 찍으며 여러 번 경험하는 일이다.
항상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기대했던 장면이 연출되었다고 해서 그걸로 만족하고 스스로 감탄에 휩싸이게 되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나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신문지상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자주 보지 않던가. 잘 나가던 사람이 한순간에 몰락하는 것을. 그 밑바탕에는 자만심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