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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01. 2022

도서관 가는 길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는 네거리 교차로가 두 번 있다. 교차로와 교차로 사이에는 100미터의 간격이 있다. 첫 번째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평상시의 보폭으로 걸으면 다음 교차로의 직선 방향 횡단보도의 신호가 막 빨간색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그러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아니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세 번 건너든지. 그걸 알고 나서부터 S는 첫 번째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부터 잠시 뛰기도 하면서 빠르게 걸었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평상시의 보폭으로 걸으면 다음 교차로의 직선 방향 횡단보도에 이르기 5~10미터 지점에서 파란색이 점멸하다가 빨간색으로 바뀐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세 번 건너서 시간을 단축할 길이 없다.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역시나 언제부턴가 첫 번째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부터 잠시 뛰기도 하면서 빠르게 걷는 습관이 들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다섯 권의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첫 번째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부터 뛰다가 책 한 권이 바닥에 떨어졌다. 책을 주워들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보았더니 휴대폰이 만져지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주머니란 주머니를 모두 더듬어 보아도 휴대폰이 없었다. S는 왔던 길을 천천히 뒤돌아 걸었다, 바닥에 눈을 빠트린 채로. 그러나 길바닥을 샅샅이 눈으로 훑어보아도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집에 두고 왔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오는 길에 어디 들렀던가? 그러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이 공황상태에 빠진 것처럼 멍해졌다.

  얼마 전에 건너왔던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횡단보도가 끝나는 지점, 보도블록 바로 아래에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휴,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평소에는 손에 들고 다니던 휴대폰이었다. 걸을 때만 해도 한 손에는 책, 한 손에는 휴대폰이었다. 책 다섯 권을 한 손에 들고 뛰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뛰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휴대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책을 두 권, 세 권 양손에 나누어 든 것이었다. 약간 둔덕진 보도블록으로 뛰어오르는 찰나에 휴대폰이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게 틀림없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다행이었다. 누군가 자신보다 먼저 휴대폰을 발견하고 주워들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고, 돌려받는다 해도 번잡스러운 절차를 거쳐야 할 테고…….


  서둘러서 가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빨리 간다고 해서 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요, 늦게 간다고 해서 벌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절약해서 절약한 만큼의 시간을 유용하게 쓸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대체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언제부터 이랬을까……. S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해 보았다.

  등산을 할 때도 빨리 정상에 오르겠다는 일념에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도시 생활의 번잡함이나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려 찾은 산이었을 텐데 말이다. 운전을 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과속을 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독서를 할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차분하게 음미하며 읽기보다는 빨리 읽어치우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 경향이 짙었다. 마치 읽은 책의 숫자가 온전히 지식의 양이 되어 내면에 차곡차곡 쟁여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러나 읽은 책을 시간이 지나서 집어 들고서는 이전에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참으로 허망한 경우도 종종 있지 않았던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뭘 하든지 빨리빨리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돌이켜 보건대 그런 습성으로 인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더 많았다. 단기적으로야 성과나 효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소탐대실(小貪大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속을 하여 목표지점에 빨리 도착하는 습성이 몸에 배면 그만큼 사고 날 확률이 높아지는 건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책을 많이 읽는다한들 그것이 자신의 삶에 자양분이 되지 못한다면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는 네거리 교차로가 두 번 있다. 교차로와 교차로 사이에는 100미터의 간격이 있고, 첫 번째 교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평상시의 보폭으로 걸으면 다음 교차로의 직선 방향 횡단보도의 신호가 막 빨간색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이제 S는 멈춰 선 채 기다린다. 신호등이 다시 파란색으로 바뀌기까지의 시간을 재보았더니 고작 2분 13초가 걸릴 뿐이었다. S는 천천히 책을 읽듯 물끄러미 교차로의 흐름을 지켜본다. 똑같은 장면은 단 한 번도 없다. 매순간 새로운 흐름 속에 서 있다. 뛰어간다면 보이지 않을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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