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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Jan 30. 2022

의도와 반응

  “아버님, 뭘로 드릴까요?”

  S가 커피숍에 들어가 메뉴판을 쳐다보고 있을 때 직원이 살포시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넸다. 순간, S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쏘아붙여 주고 싶다. ‘아버님? 내가 누구 아버진데요? 누구한테나 통용되는 말을 써야지, 아버지 아닌 사람에게 아버님이라고 하면 기분이 얼마나 착잡한 줄 알아요?’ 그러나 이런 소리를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애써 마음을 다독인다. 너그럽게 살아야 한다, 하고 자신의 내면을 향해 속삭인 다음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나서 S는 자리에 앉는다. 직원은 부러 친밀함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손님’이라는 딱딱한 말 대신에 정감이 넘치는 ‘아버님’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으리라.


  심심하면 한 번씩 S는 ‘아버님’ 소리를 듣는다. 마트에서, 은행에서, 도서관에서, 병원에서…….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다. 나이가 들어 보이니 당연히 결혼했겠고 자식도 있겠지, 라는 판단이 작용했으리라. 그러나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한 상태에서 들으면 몹시 불편한 말이다.


  일상에서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듣는 사람의 반응이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 예상과 판단으로 인해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 처녀인데 ‘아가씨’라고 하지 않고 ‘아줌마’나 ‘어머님’이나 ‘사모님’ 같은 말로 부른다면 좋아할 처녀는 없으리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 난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저기요’ 같은 참으로 거시기한 표현이 많이 사용된다. 하기는, 부부 간에 서로를 부르는 말로 가장 많이 쓰이는 ‘여보’도 ‘여기 보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저기요’ 또한 유서 깊은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기요’라고 하면 존중의 느낌이 없고 거리감이 느껴지고, 잘못 받아들여지면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남자에겐 ‘사장님’, 여자에겐 ‘여사님’ 같은 높임 표현이 두루 쓰이고 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 부름으로써 갈등의 여지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S는 이러한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겉으로 표현된 의미와 실제 의도 사이에 너무 큰 간격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그보다는 ‘선생님’ 정도의 표현이 적당해 보인다. 과도한 호칭을 사용할 바에는 차라리 호칭 없이 말을 하는 게 낫다. ‘안녕하세요’나 ‘실례합니다만’ 정도의 인사말을 건네고 용건을 말하면 되지 않을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듯이, 과도한 겸양이나 친절 표현은 말 듣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다. 실제로 상대방을 존중한다기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서 저렇게 말하는구나, 싶은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듣는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만 부각되어 보인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높여 부르니까 나에게 함부로 하지 않겠지, 하는 방어 심리. 이곳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고 다음에도 찾아오세요, 하는 포섭 심리 같은 게 녹아들어가 있는 듯 느껴진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오셨습니다.”

  직원이 S를 향해 말했다. 이번엔 다행히 ‘아버님’ 소리가 빠졌다. 대신에 아메리카노가 과도한 높임을 받았다. S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메리카노님을 영접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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