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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Jan 25. 2022

음악의 추억

  홀로 있는 시간 속에서 S가 주로 하는 것은 책읽기와 음악듣기이다. 그 중에서도 뿌리가 더 깊은 것은 음악듣기이다. 책읽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조금씩 했던 것이지만 음악듣기는 그 이전부터였다.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된 이후로 음악은 S의 가장 가까운 벗이 되었다.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 시절에 동료들 사이에서 최고 선망의 대상은 단연 싸움꾼들이었다. 누구와 누가 맞붙었는데 누가 이겼다더라, 우리 학교 짱이 다른 학교 짱과 맞붙어서 이겼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은 신화 속의 한 장면처럼 회자되었다. 그 다음으로 선망의 대상은 공부 잘하는 아이였고, 운동 잘 하는 아이, 남들을 잘 웃기는 아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싸움도 못하고 공부도 그저 그렇고, 뭐 하나 특출한 게 없었던 S도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그 무언가로 발산하고 싶었다. 그것이 음악이었다. 처음엔 감미로운 음악을 즐겨 듣다가 점차 강렬한 헤비메탈에 빠져들었다.


  공 테이프를 사서 카세트에 넣고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녹음을 하는 것, 그것이 S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오디오가 없어서 LP는 구입해도 무용지물이었고, 음반사에서 발매한 카세트테이프는 비싸서 살 수 없었다.

  라디오 DJ가 가수 이름과 곡명을 말한 바로 뒤에 녹음 버튼을 누르고, 음악이 끝을 맺는 순간에 정지 버튼을 누르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던가. 그 순간을 놓쳐서 DJ의 말이나 광고가 살짝 끼어들어간 것을 확인하게 되면 절로 한숨이 나오곤 했다. 

  공 테이프에 녹음한 소리는 음반사에서 발매하여 나오는 소리와 비교하여 확연히 음질이 떨어졌다. 게다가 몇 번 듣다 보면 소리가 늘어지기 일쑤였다. 때로는 테이프가 카세트에 걸려 소리가 재생되지 않았고, 그러면 카세트에서 테이프를 빼내어 풀리거나 엉킨 테이프의 줄을 정성 들여 감아주어야 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집에 오디오가 생겼고, S는 가끔씩 큰 맘 먹고 LP를 구입했다. 큰 맘 먹기 힘들 땐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LP는 카세트테이프보다 훨씬 비쌌지만 소장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재킷에 인쇄된 사진이나 그림이 멋스러운 것이 많았고, 턴테이블 위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코드판 또한 시각적 즐거움을 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CD라는 게 나왔다. LP보다 크기는 확 줄었고 음질은 훨씬 좋아졌다. S는 그러나 CD와는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CD는 카세트테이프처럼 싸지도 않았고, LP가 선사하는 시각적 즐거움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결국 CD를 구입하고 친해지려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를 새로 구입했더니 테이프를 넣던 공간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CD플레이어가 차지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인터넷 세상이 되었고, 굳이 CD를 구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원하는 곡만 다운로드하여 MP3나 휴대폰에 마음껏 저장하여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저장하고 소유할 필요조차 사라졌다. ‘구독’을 하고 언제든지 듣고 싶은 음악을 스마트폰을 통해 곧바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사람들은 거기에 발맞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못하면 자꾸 뒤처지는 느낌에 사로잡히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지장이 생긴다. S 또한 CD 세상을 살면서 지니고 있던 카세트테이프들을 모두 버렸다. LP는,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멋진 카페를 차리고 활용할 생각으로 지니고 있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결국 스마트폰 세상을 살면서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그 누군가에게 헐값으로 팔아넘겼다.

  테이프와 LP를 모두 처분하고 말았지만 추억만큼은 S에게 남아 있다. 좋아하는 곡들을 고르고 골라서 공 테이프에 녹음한 다음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선물했던 기억들. 양초를 켜놓은 채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흘러나오는 LP 음악을 들으며 첫사랑과 첫키스를 했던 그 겨울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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