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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Jan 24. 2022

홀로족의 꿈

  S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밤늦게 하교하는 생활에 지치고 질려 있었다. 그런 어느 가을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학교 건물 밖을 거닐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왔다. S는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느꼈다. 언제까지나 이 순간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시원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빨갛게 물든 노을이 보였다. 그 어떤 언어로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그 어떤 화가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그 어떤 음악가도 완벽하게 음률로 형상화할 수 없는 노을이었다. S는 바람을 느끼며 노을에 시선을 붙들린 채 한동안 서 있었으며, 바람을 타고 저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의 울림이 언어를 만들어냈고, 그 언어를 S는 읊조리다가 잊지 않기 위해 서둘러 교실로 가서 노트에 적었다.


  그때부터 S는 저녁 자율학습 시간을 몰래 빠져나와 도심을 배회했다. 그 전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이제 더더욱 학교 공부에는 흥미를 잃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빨간 노을이 펼쳐진 세상을 마음속에 품은 채 이곳저곳 거닐었다. 그런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은 어디에 있는 걸까, 두리번거리며 헤매다가 서점에 들어갔다. 이 책 저 책 둘러보다가 헤르만 헤세에게 꽂혔다. 헤세는 이곳이 아닌 다른 어떤 곳을 향해 방랑하는 이야기들을 펼쳐 놓고 있었다.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S는 헤세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헤세가 제시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S는 헤세처럼 되고 싶었다.


  그 길이 얼마나 멀고 먼 길인지,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S는 알지 못했다. 시를 쓰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소설을 쓰면 누구나 소설가가 되는 것으로 알았다.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더 많다는 것을, 아예 작가라는 명함조차 지니지 못한 채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더더욱 많다는 것을 S는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건대, S는 독서력도 경험도 부족했다. 필력 또한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채로 글을 썼고, 신춘문예나 공모전 같은 곳에 보냈다. 그러나 매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때마다 S는 절망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떤 곳을 향한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다 보니 홀로 된 시간 속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극단적인 생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날들도 많았다. 


  나이가 든 S는 생각한다. 너무 쉽게 욕망하고 너무 쉽게 절망한 나날들이었다고. 욕망이 크면 절망도 큰 법이라고. 이제부터라도 욕망을 줄여야겠다고. 헤르만 헤세처럼 잘 알려진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지워야겠다고.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고.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써야겠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야겠다고. 다른 어떤 곳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지금 이곳을 제대로 보고 느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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