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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Jan 23. 2022

홀로족의 하루

  지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태양의 둘레를 돈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구심력이 더 강해진다면 태양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며, 원심력이 더 강해진다면 태양으로부터 벗어나고 또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떠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몇 십억 년이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변함이 없었기에 앞으로도 궤도에서 이탈하는 사건 같은 건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 거대한 흐름에 동승하고 있는 지구 안의 생명들도 일정한 궤도의 삶을 살아간다. 몇 백 년, 몇 십 년이 아니더라도 1년 동안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일정한 흐름이 있고, 하루에도 낮과 밤이 있으며, 생명들은 그 일정한 흐름에 맞추어 살아간다. 

  지구가 그런 것처럼 동물도 일정한 길을 오가는 습성이 있으며, 동물 중의 한 종류인 사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홀로족 S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오전 여덟 시쯤 일어나 밥을 먹고 씻고 밖으로 나와 집에서 3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간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열한 시를 넘어서면 점심을 먹으러 나온다. 점심을 먹는 곳도 몇 군데로 정해져 있다. 청국장, 뼈다귀해장국, 채식뷔페, 콩나물국밥, 불고기뚝배기. 가끔은 국수나 칼국수. 커피숍도 그렇고 식당도 그렇고, 이곳저곳 다니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가지 않게 되고 마음에 들면 지속적으로 가게 된다. 점심을 먹고 나면 S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국어 교습소로 향한다. 교습소에서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고 뉴스를 둘러본 다음 수업 준비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교습소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다시 교습소로 향한다. 수업이 있으면 수업을 하고 수업이 없는 날에는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영화나 유튜브를 본다. 오후 아홉 시나 열 시쯤이면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잔다.


  가끔씩 특별한 일이 생기거나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하루하루가 이렇듯 단조롭다. S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다른 삶을 꿈꾼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나 꿈은 항상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 조금만 가면 잡힐 것 같아 허겁지겁 다가가 보면 또 저 멀리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유혹하고 있었다. 그런 채로 시간만 흘러갔다. 그것이 벗어날 수 없는 궤도처럼 되고 말았다. 


  홀로족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꿈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신의 성향 때문이 아닐까, S는 생각한다. 세상엔 꿈을 이룬 소수의 사람들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접고 현실적이 된다. 이제 나도 꿈을 접고 철저히 현실적이 되어야겠다고 S도 몇 번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항상 일시적이었다. 저 멀리에 꿈이라는 신기루가 반짝거리면 다시금 몸은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도 S는 어제와 마찬가지의 길을 오고간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변함없이 빙빙 돌듯이 S는 꿈을 중심에 둔 채 돌고 또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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