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최고를 가리는 격투기 개인대회에서 기열과 명현이 치열한 혈투를 벌였다. 기열의 강력한 주먹과 변칙적인 발차기에 명현은 단련된 맷집으로 버텼으며, 명현의 날쌘 움직임에 뒤이은 태클과 파운딩에 기열은 타고난 근력으로 떨쳐 일어났다. 그야말로 막상막하, 용호상박의 경기였다. 정해진 시간이 끝났을 때 기열과 명현 모두 서 있기도 힘든 탈진 상태였다. 관중석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판정 결과를 기다렸다. 심판이 마이크를 들고 점수를 공개했다. 기열 48점. 명현 47점. 그러곤 기열의 손을 잡고 위로 올렸다.
명현은 며칠간 낙심에 빠져 지냈지만, 다시 맹렬한 훈련에 돌입했다. 동료들과 함께 패배한 경기를 분석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명현은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시간 날 때마다 산과 호수에서 운동을 했다. 뛰어서 산 오르기, 바위 들어 올리기, 호수 끝에서 끝까지 헤엄치기 등을 하며 체력을 연마했다. 맨손으로 잉어를 잡고 맨몸으로 멧돼지를 제압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동네 짱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인지도를 높여왔다. 그에 따라 소문이나 명성을 듣고 명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났다.
명현은 이번 경기에서는 패배했지만 약점을 보완하여 다음 경기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리라 다짐을 했다. 변함없이 성실하게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신뢰도는 높아졌고, 그를 믿고 따르는 무리는 더욱 불어났다.
그와는 반대로 기열은 승리의 기쁨에 취했다. 비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취했다. 훈련은 대충하고서 밤마다 파티를 벌였다. 명현을 가까스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도 되지 않게 이겼다는 둥 봐주면서 경기했다는 둥 하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기열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시설이 잘 갖추어진 체육관에서 훈련을 받았다. 운동하기 싫다고 생떼를 부린 적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엄한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아야 했고, 마지못해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체육관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많았다.
경기의 수준이 높아갈수록 보상뿐만 아니라 승리의 쾌감도 그에 비례하여 커진다는 것에 맛을 들이면서부터 기열은 훈련에 열중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경기력은 쑥쑥 향상되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근력에 뒤늦게 발동걸린 승부욕이 결합하면서 대적하기 힘든 강자로 급부상하였다.
승승장구하다 보니 이제는 어떤 상대를 만나도 깔보는 습성이 몸에 배었고, 피를 보면 야릇한 쾌감에 사로잡히며 흥분하여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붓곤 했다. 그런 까닭에 그와의 대결을 꺼리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경기 전에 그의 얼굴을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리는 선수가 있었다는 소문이 떠돌 지경이었다.
지역 최고의 선수가 된 순간부터 기열의 말과 행동은 날개를 달았다. 자신의 뜻에 따르는 사람과는 흥겹게 술을 마셨지만,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이 보이면 다짜고짜 행패를 부렸다. 그럴수록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그의 말과 행동이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거들 따름이었다. 구설수에 오르거나 사태가 커질 것 같으면 거짓말로 대충 얼버무리곤 하였다.
1년 뒤에 지역 최고를 가리는 격투기 단체대회가 열렸다. 예상대로 기열이 속한 체육관 팀과 명현이 속한 산호수 팀이 결승에 올랐다. 기열과 명현은 선수로 참가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도 중요한 대회였다. 단체가 우승을 해야 그만큼 상금도 많고 후원금도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지지 기반이 탄탄해지고 운동에 매진할 여력도 커지는 것이다. 28명씩 출전했는데, 산호수 팀에서 17명이 이겼고, 체육관 팀에서 11명이 이겼다.
기열은 자존심이 상했다. 잘 갖추어진 시설에서 운동을 한 우리 팀이 산과 호수에서 뛰어다니는 촌뜨기들에게 지다니……. 관중석에서 들려온 소리들 때문에 더욱 부아가 났다. “기열아, 저번에는 운 좋게 네가 이겼지만, 다시 겨루면 넌 명현이한테 쨉도 안 될 거야!”, “인성이 바른 선수가 진정한 챔피언이다!”, “선수가 배 나온 것 좀 보라지. 그거 술배지?” 그런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놈들을 찾아내서 묵사발을 만들어버리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