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뭣들 해! 저놈들 아주 그냥 싹 쓸어버려!”
그러나 후배들과 양아치들이 머뭇거렸다.
“제가 그동안 형님 믿고 따랐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후배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아무리 우리가 양아치라지만…… 명분 없는 싸움은 안 할랍니다.”
양아치 중 한 명이 뒷걸음치며 말했다.
“이 새끼들을 그냥 확…….”
마음 같아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칼로 베어버리겠다는 표정을 내비쳤지만, 결국 기열은 물러설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모한, 그리고 낭패로 끝난 기열의 습격 사건은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졌다. 선수라면, 선수 중에서도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라면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기열에 대해 선수들, 심판들, 지역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성토가 이어졌다. 그러자 격투기협회에서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기열과, 가담했던 후배들과 양아치들 중 다수는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냐.”, “자꾸 험담하는 놈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용도로 무기를 들고 간 것이다.” “그놈들의 비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잠시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뿐이다.”
평소 기열과 체육관 팀을 응원하던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부응하며 선동에 나섰다. “기열이는 역대 최고의 선수다!”, “기열이에게 그런 행동을 하도록 만든 자가 진짜 나쁜 놈이다!”, “기열이한테 지고 나서 명현이 그 새끼가 앙심을 품고 험담을 일삼았다.”, “심판 매수에 마을 사람들까지 꼬드기는 짓을 한 파렴치한 놈을 제거해야 한다.”, “기열이 같은 대단한 선수가 오죽했으면 그런 일을 벌였겠냐.”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선동에 휘둘리며 울분에 사로잡혔다. 명현 일당에게 핍박을 당하는 기열이를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고,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순교하겠다는 사람까지 생겨날 지경이었다.
사태를 상식의 차원에서 판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선동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명현과 산호수 팀이 내보인 입장과 태도, 기열과 체육관 팀이 내보인 입장과 태도를 비교해 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어렵지 않게 분간할 수 있었다. 선동을 일삼는 자들과 선동에 넘어간 자들을 향해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호통을 쳤다. 격투기협회의 위원들도 지역 사람들인 만큼 지역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의 대표 선수로서의 자격을 박탈시킬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선수들이 잔인무도한 폭력배가 되는 세상을 그들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양아치들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선수로서의 격을 떨어뜨리냐고 격투기협회 위원들이 추궁하자, 기열은 그런 적 없다고 딱 잡아뗐다. 양아치들이 아니라 양치기들이라고 둘러댔다. 산호수 팀의 아지트에 가서 '저놈들 싹 쓸어버려'라고 했다는데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속이 거북해지게 만드는 썩소를 날리면서 "빗자루로 쓸어 버릴 일 있으면 우리도 동참하겠다, 뭐 그런 좋은 뜻으로 한 얘깁니다. 선수들이 다 함께 모여 청소를 하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저는 그리고 '사람'이라는 표현을 놔두고 '놈'이라는 말을 이날 이때까지 써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분도 지나지 않아서부터 "……위원님들께서도 그놈들이 얼마나 악랄한 놈들인지 아신다면 제 심정에 충분히 공감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놈이 선수들에게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 아십니까? ……그놈한테 제발 질투 좀 그만하라고 얘기 좀 해주십시오. 그놈의 질투 때문에 제가 아주 그냥 돌아버리겠습니다. ……그깟놈 때문에 제가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오지 않는 처지가 되었지 뭡니까. " 하면서 '놈'을 마구 쏟아냈다. 그런 뒤에 어떤 술을 어떻게 마셔야 몸에 좋은지에 대하여 한 시간여 동안 신나게 떠들어댔다. 기가 막혀 말문이 닫혀버린 위원들은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써야만 했다.
사건을 조사하고 심사한 격투기협회 위원들은 전원 일치로 기열에 대한 선수 제명을 확정했다. 제명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막아선 주민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가담자들 중 일부의 반발이 없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선수는 선수다워야 한다. 양아치 짓을 할 거라면 선수를 그만두는 게 마땅하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사과하기는커녕 거짓말로 일관하며 잘못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행위는 더욱 용납하기 힘들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지역 대표 선수라는 게 심히 부끄럽다.”
기열은 어쩔 수 없이 챔피언 벨트를 반납해야 했다. 체육관에서도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따라 챔피언 결정전이 앞당겨졌는데, 명현이 챔피언에 오를 것이 거의 확실시되었다. 대등하게 겨룰 만한 상대가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끝)……(아니, 새로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