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진 이야기 #2

by 이룸


먼 나라에 가지 않았더라도 위험한 순간들은 종종 있었다. 어느 가을,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한 다랑이논을 사진에 담기 위해 자동차를 몰고 삼봉산을 올랐다. 급경사였고,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중간쯤 오르다가 공터가 있어서 차를 세우고 다랑이논을 바라보았다. 실망스러운 장면이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환상적인 모습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풍경사진은 역시 시기와 날씨 같은 조건들이 딱 들어맞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왕 온 김에 삼봉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금대암을 향해 차를 움직였다. 금대암과 금대암에서 바라본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이제 내리막길로 차를 몰았다. 최대한 천천히 조심조심 운전해야 했다. 차 한 대만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 거기다 급경사였다. 조심조심 운전한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 굽어진 곳에서 오른쪽 앞바퀴가 길에서 벗어났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대로 나아가면 낭떠러지로 직행이었다. 내리막 경사인지라 최대한 신속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었다. 후진 기어로 전환하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는 즉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했다. 몸에서 땀이 났다.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잽싸게 발을 움직였다. 다행히 바퀴가 다시 길 위로 올라왔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휴,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2012년 10월 경남 마천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찔하기만 하다. 까딱 잘못 됐으면 나는 오래전부터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 진안에서 전주로 향하는 길이었다. 창밖으로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진 산을 발견하곤 큰길을 벗어나 좁은 길로 들어섰다. 공터처럼 생긴 곳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설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누군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내렸더니 어떤 아저씨가 낫을 치켜든 채 나를 노려보았다. 왜 남의 밭에다 주차를 하냐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눈이 쌓여서 여기가 밭인 줄 몰랐습니다.” 나는 용서를 구했다. 시동을 걸고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영화 <마파도>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좀 더 포악하거나 성질 급한 사람을 만났으면 어쩔 뻔 했는가.


위험한 순간보다 허망한 순간은 더욱 많았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장면이 그대로 연출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열 번에 한 번 나올까 말까다. 옥정호의 붕어섬에 물안개가 멋지게 떠오른 장면을 담기 위해 국사봉을 몇 번 오르내렸던가. 어떤 땐 안개가 아예 없어서 밋밋했고, 어떤 땐 안개가 너무 많아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운해와 어우러진 마이산을 담기 위해 부귀산은 또 얼마나 갔다 왔던가. 국사봉이나 부귀산은 자동차를 세우고 나서 20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 그러나 대둔산 같은 경우에는 한 시간 30분은 족히 걸어 올라가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먼 거리를 운전하고 나서,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힘들게 산을 올랐는데, 머릿속에 그리는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장면이 펼쳐질 때의 허망함이란…….


기대에 못 미칠 때의 허망함과는 반대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을 만나게 될 때면 희열을 느끼게 된다. 금강의 해질녘 풍경을 담고자 해서 웅포에 갔더니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해질녘 노랗게 물든 강, 물 위로 비치는 햇빛, 거기에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의 실루엣이 어우러지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었다. 5월에 철쭉꽃을 담기 위해 바래봉에 간 적이 있는데, 산 아래쪽에 지리산 허브밸리라는 테마파크가 있었다. 넓은 평원에 펼쳐진 양귀비와 캐모마일과 라벤더 등의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잔치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바래봉의 철쭉꽃보다 훨씬 많은 허브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왔다.


2010년 12월 익산 웅포


사진 찍기도 결국엔 인생의 속성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다. 멋진 꿈을 꾸고, 그러나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해 실망하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운에 기뻐하기도 하고…… 그런 채로 시간이 흘러간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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