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예술가들 #2
네가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무엇이 되겠느냐? 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기타리스트라고 대답하겠다. 여섯 줄짜리 악기 하나로 온갖 소리를 창출해내는 그들이 정말이지 부럽다.
스무 살 때 잠시 기타 학원에도 다녀보고 독학도 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기본 코드에 기본 주법, 그 이상 나아가지를 못했다. 이후로도 미련이 남아 가끔씩 기타를 만지작거려 보았지만, 역시 음악은 타고난 천재성이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선가 훌륭한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를 보거나 들으며 감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되었다.
10대 후반, 그리고 20대 초반.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 그래서 음악에 미쳐 사는 시기.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이 공감하리라 본다. 그 이전은 감수성이 만들어지는 시기이고, 그 이후에는 감수성이 조금씩 무디어진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젖어든 음악은 그래서 평생 간다. 그리하여 음악 산업이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주 타깃으로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나의 경우,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록과 헤비메탈 음악에 빠져들었는데, 2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심심하면 한 번씩 머릿속을 맴돈다. 그 이후로는 그때처럼 음악에 풍덩 빠져든 기억이 없다. 의도적으로 어떤 음악을 집중적으로 듣는다할지라도 그때와 같은 감수성으로 듣는 것은 아니다.
록과 헤비메탈 음악 중에서도 가장 먼저 빠져든 것은 게리 무어의 기타였다. 헤비메탈이면서도 잔잔한 서정성을 겸비한, 그래서 '메탈 서정시'라고 명명하고 싶어지는 게리 무어의 기타 음악은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온몸과 마음을 기타 하나에 쏟아붓는 듯한 그의 정열적인 연주 모습은 시선까지도 휘어잡았다. 하지만 게리 무어의 음악은 편차가 심한 편이었다. 'Parisienne walkways'나 'Empty rooms', ‘The loner’ 같은 곡에 사로잡혀 앨범을 구입해 보면 정제되지 않은 느낌의 곡들이 꽤 있었다.
그럴 즈음 현란한 기타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졌으니, 잉베이 맘스틴이다. 도대체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다채롭고 화려한 장식음을 마음껏 구사하는 이 인간의 기타 연주는 생각할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잉베이의 기타 소리를 듣다 보면 이 지상의 세계를 떠나 천상의 별들 속을 유영하는 듯한 몽롱함과 황홀감이 온몸을 휩싸고 돌았다. 하지만 잉베이의 음악은 너무 정신이 없게 만든다. 기타를 마음껏 주무르는 모습은 부럽기 그지없지만, 모든 곡에서 기교가 너무 앞서는 게 아닌가 싶은 불편함이 고개를 들곤 했다.
게리 무어의 강렬함도, 잉베이 맘스틴의 현란함도 없지만, 그래서 처음엔 큰 감흥 없이 들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젖어들게 만드는 기타 소리가 있었다.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 강렬함도 현란함도 아니었다. 따뜻했다. 그의 기타 소리는 따뜻하고 포근했다. 차분히 귀 기울이게 하고 천천히 생각하게 했다. 게리 무어와 잉베이 맘스틴의 음악에서는 감성의 비중이 너무 크다. 그에 반해 마크 노플러에게서는 감성과 이성이 나란히 놓인다. 적절한 절제감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기타 소리와 목소리는 그래서 삶의 태도를 사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