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생각 줍기 #4
처음에 내비게이션을 접했을 때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정말이지 과학기술이라는 건 대단한 거구나 싶었다. 물론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으로부터 전파를 받아 위치를 파악한다는 기본 원리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다분히 추상적인 수준의 지식일 따름이었다. 자동차가 나아갈 때마다 매번 위치를 알려주고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해주는 데에야 감탄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시절, 처음 가는 곳을 찾아가려면 그 얼마나 막막했던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지도를 검색하곤 종이에 길과 건물 이름들을 적어 두어야 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더더욱 막막했다. 종이 지도를 마련해서 출발해 보지만, 종이 지도는 지면상의 한계로 인해 세세한 곳까지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헤매기 일쑤이며, 길 가는 사람들에게 몇 번씩 물어보아야 했다.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간혹은 엉뚱하게 알려주어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내비게이션이란 참으로 혁명적인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저 기계에 표시되는 방향 표시와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따라서만 운전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목적지에 와 있다.
항상 그렇듯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장점은 곧 단점이 되기도 한다. 내비게이션에 의존적이 되면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다녀도 길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길과 건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기계가 안내하는 소리에 따르다 보면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어지고, 큰 틀로 보거나 생각할 수도 없게 된다.
내비게이션 없이도 막힘없이 이곳저곳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고, 하여 낯선 곳이나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갈 때에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편리하고 빠르게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어 분명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하여 내비게이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습성을 들이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줄어들게 된다.
내비게이션이 언제나 효율적인 것만은 아니다. 평소에 잘 알고 있는 길을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가게 될 경우, 엉뚱하게 알려주어 허탈한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내비게이션은 또한 자동차들이 자주 다니는 큰길 위주로 안내를 하므로 지름길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어떤 땐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소리에 따라서만 빙빙 돌아서 도착했더니 출발지의 바로 맞은편인 경우도 있었다. 운전대를 잡을 필요 없이 그저 횡단보도를 건너기만 하면 되었는데 말이다.
같은 장소를 서너 번 가다 보면 내비게이션 없이도 운전할 수 있어야 바람직하다. 열 번 넘게 다녀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아예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면 기계에 대한 의존증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아날로그가 폐기처분된 것은 아니다. 아니, 폐기처분할 수가 없다. 아무리 최첨단 문명의 시대가 와도 우리는 여전히 아날로그를 기반으로 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낯선 곳이나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갈 때에 전적으로 내비게이션에 의존하기보다는 지도를 통해 길과 장소를 확인하고 나서 출발하는 수고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