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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Mar 13. 2020

손님

  오랜만에 청소를 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했으니까 넉 달 만일 것이다. 봄이 오는 느낌이 들기에, 내 인생에도 봄이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나서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파닥파닥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직박구리 한 마리가 방 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열린 창 너머로 길을 잘못 든 것이었다. 다시 휭하니 밖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헤매고만 있었다. 벽으로 둘러싸인 낯선 공간에서는 방향감각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듯했다. 꺅꺅 소리를 지르며 방 안을 돌고 또 돌더니 의자에 앉았다가 컴퓨터에 앉았다가 이젤 위에 앉았다가……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물똥마저 찍찍 갈겨댄다. 그렇잖아도 새가슴인데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절박하게 고동치는 심장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쯧쯧, 나는 혀를 찼다.


  “왔던 곳으로 다시 나가면 돼, 구리야. 넌 성이 직박이고 이름이 구리냐? 딱따구리하고는 무슨 관계야?”


  나는 실실 웃으며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러자 직박구리가 꺅꺅 소리를 내질렀다. 


  “뭐라는 거야? 알아듣게 얘기를 해봐.”


  나는 또 실실 웃으며 말을 건넸다. 녀석은 다시금 꺅꺅댔는데, ‘너나 알아듣게 얘기해 봐, 꺅꺅거리지만 말고.’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하긴, 인간은 새들을 보며 꺅꺅거린다고 하지만 새들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인간이 꺅꺅대는 것으로 느껴질 법도 하다. 어디 그것이 새와 인간 사이에서만 벌이지는 일이겠는가. 인간끼리도 그러한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언어가 달라 소통이 되지 않는 낯선 인간들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한 경우가 인류 역사에 얼마나 많은가. 언어가 같더라도 추구하는 바가 다르면 나쁜 놈들로 몰아세워 처단한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거창하게 인류 역사까지 떠올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일상에서도 숱하게 목격하는 일 아닌가. 아내였던 여자와 나만 해도……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가슴이 쓰렸다. 


  “어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쩍 벌린 채 감탄하던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꿈꾸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생활이 이어지고, 그런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다는 걸 알게 되자 경탄의 눈빛은 차츰 실망과 이해불능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언제부턴가 대화는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고, 서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해독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아내였던 여자가 최종적으로 말했고, 나 또한 거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박자가 들어맞았다. 


  그림을 그리면 누구나 화가로서 먹고살 수 있는 줄 알았다. 풍족하게는 아니어도 그럭저럭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것은 극히 소수의 인간에게만 허용되는 일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어야 했다. 전시회라도 한 번씩 열려고 하면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았고, 그림은 가끔씩 가뭄에 콩 나듯이, 그것도 5만원, 10만원 하는 가격에 팔렸다. 먹고살기 위해 미술학원에서 강사를 하다가 돈이 좀 모이면 그만두고 그림에 몰두하곤 했다. 나이가 좀 드니 미술학원에서 뽑아주지를 않았다. 그래서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음식점 배달 일을 하다가 대리운전을 하다가…… 그런 채로 시간은 켜켜이 쌓여 세월이 되었고, 세월의 무게가 더해 갈수록 꿈꾸던 삶에 대한 가능성은 희박해져갔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나 의욕마저 시들시들해졌다. 내가 왜 이 길을 들어섰을까, 하는 자책과 한탄이 무시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짜식, 그러고 보니 잘못 들어선 곳에서 헤매는 꼴이 꼭 나를 빼닮았구나.”


  나는 직박구리를 향해 연민의 감정을 담아 소곤거렸다. 순간, 의자 등받이 위에 앉아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던 녀석이 휭하니 날아 창턱에 내려앉았다. 이제야 낯선 공간에 대한 방향감각이 살아난 모양이었다. 바깥쪽과 안쪽을 번갈아 보던 녀석이 나를 향해 꺅꺅 꺅꺅 연이어 소리를 냈는데, 이번에는 그 의미가 정확히 들렸다.


  ‘빼닮긴 뭘 빼닮아. 갖다 댈 걸 갖다 대라. 난 잠시 헤맸지만 넌 삼십 년째 헤매고 있잖아, 인간아. 으이구, 쯧쯧…….’


  말을 마치자마자 직박구리는 창밖의 세상으로 사라졌다. 몽둥이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걸 일깨워주고 곱씹게 하려고 일부러 나를 찾아온 건 아니겠지? 설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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