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심하고 충실한 F로 살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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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형들이 가장 못하는 일 1위가 미움을 받는 것이었는데 2위는 소폭의 차이로 미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픔을 안다고 미움받을 때의 아픈 마음을 아주 잘 알기에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어찌 되었든 나의 미움으로 갈등이 생기면 우리의 마음도 퍽 불편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은 (아니 어쩌면 자주) 미워할 용기도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왕따, 따돌림, 인신공격 등의 범죄를 저지르라는 뜻이 아니라 맞설 때는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 반대도 해보고 다른 사람이 보내는 부정적인 피드백에 단호하게 거절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미워할 용기에 대해서는 김혜수 님이 장희빈으로 열연하신 사극 ‘장희빈’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예쁘고 화려한 한복을 구경하는 재미와 권선징악의 통쾌함 때문에 이 드라마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장희빈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는 것은 아주 좋은 힐링이다. 이렇게 장희빈을 여러 차례 보다 보니 미워할 용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역사가들의 여러 견해와는 상관없이 내가 본 드라마 장희빈에서 인현왕후는 정말 착하고 순한 사람이다. 장희빈이라는 악인에게 (내가 본 드라마의 설정이다.) 맞서지 않고 참고 또 참으며 세월을 보내는 선한 사람. 오죽하면 희빈에게 회초리를 맞고 있는 숙빈을 구하기 위해 인현왕후가 희빈의 뺨을 때리며 “그렇게 말을 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어디까지 기어올라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고얀 것.”이라 말하는 장면이 그렇게 통쾌했을까. (드라마를 찾아보고 싶다면 77회를 참조해주시길 바란다.)
드라마에서는 장희빈의 저주로 인현왕후가 돌아가신 것으로 표현된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여러 차례 보다 보니 저주로 인해 돌아가셨다기보다는 미움을 표현하지 않고 살아 화병으로 돌아가신듯했다. (이렇게 보면 이 일로 인해 사약을 받은 장희빈이 억울해지는 것인가? 하긴 장희빈으로 인한 화병이라면 억울하지는 않겠지!)
극 중 인현왕후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러니까 일일드라마에 나오는 복수 등으로) 다시 중전이 된 것이 아니다. 폐위되었으나 어질었던 인현왕후를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 중전이 된 희빈을 몰아내고 인현왕후를 다시 세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중전이 된 인현왕후는 중전에게 막말을 퍼붓고 무례함을 일삼는 후궁 장희빈을 아주 상냥하게 대해준다. 훗날 희빈이 낳은 세자가 왕이 되면 대비가 되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주변에서 장희빈이 자신을 저주한다고 할 때도 그저 덮어두라고 할 뿐이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인현왕후가 장희빈을 마음껏 미워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셨을까? 장희빈처럼 악행은 일삼지 않더라도 적어도 합당한 훈계를 했다면? 중전에게 대들지 말라고 직접 말한다거나 악행을 일삼는 장희빈을 중전의 권한으로 징계했다면? 아마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장희빈에게 전달이 되든 안 되든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면, 장희빈의 괴롭힘을 제지했다면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정당한 미움을 줄 수 있는 용기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3)
그런데 이런 걱정도 들 것이다. 마땅히 할 말을 해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상황만 악화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오히려 상황만 악화되는 것이 아닌가? 그냥 내가 참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않을까?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당한 미움을 표현하고 상대의 미움에 제동을 거는 것은 어쩌면 그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받지 않아야 할 상처는 단호히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나 자신에게 확신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회사에서 교육받을 때 심리를 연구하시는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상대방의 반응과 상관없이 내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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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용기, 미움받을 용기 모두 정당한 범위에서는 꼭 지녀야 할 자질이다. 상대방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나를 위해서. 당연히 폭력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용기가 없어 속으로만 앓는다면 그것 역시 나를 향한 폭력이 되고야 만다.
그러니 꼭 기억하자.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우리도 미워할 수도 있다. 당연 정당한 범위 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