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심하고 충실한 F로 살고 있습니다만,
(1)
우리 F형들이 가장 못하는 일이 무엇일까? 여러 번 생각해보지만 그것은 남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임이 분명하다. 누군가 악의 없이 던지는 말과 행동에도 많은 감정들을 입힐 줄 아는 우리들이기에 그렇다.
악의가 없어도 상처 받을 때가 많은데 누군가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우리를 대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주 잘, 예민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러면 당연히 감정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아픈 경험들이 쌓여 남들과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이가 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늘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누군가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다가올 때 마음 한 부분이 꽉 막히는 것만 같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고 불편해진 관계가 찝찝하고 싫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기 바쁘다.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그냥 불편한 관계가 싫으니 머리가 바삐 움직여 무슨 원인이라도 찾아내는 것이다.
특히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일 경우 불편함이 더욱 커진다. 위계질서도 있고 내가 원한다고 안 만날 수 있는 상대도 아니며, 어찌 되었든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내가 피해를 볼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면 스스로 위축되고 자기 자신에게 늘 좋은 사람, 버겁더라도 좋아 보이는 사람이 되라며 부담을 주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움을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미움을 받더라도 그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혼나야 하는 상황에서는 좀 혼나고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욕을 먹을 줄 아는 태도.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욕을 할 때는 같이 욕도 좀 할 줄 아는 태도)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모두와 잘 지내고자 참고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당연히 따돌림, 왕따, 인신공격 등은 그 누구도 해서도 당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미움은 저런 범죄가 아니라 함께 지내며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나 오해 등을 의미한다.
(2)
앞서 말했듯이 나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에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좀 과한 예일 수도 있겠지만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쫄지 마. XX. (XX는 맞다. 그 욕이다. 나는 XX라는 욕을 평소에는 쓰지 않으므로, 저 말이 더욱 신선하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누군가 우리 학교에 이유 없고 시대가 훌쩍 지난 비난을 한 일이 있었고 우리가 상심하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아주 잘 활용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간고사. 쫄지 마. XX
축제 준비. 쫄지 마. XX
수학. 쫄지 마. XX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앞구르기. 쫄지 마. XX (아니 앞구르기 정말 무섭다.)
졸업하고 나서도 무엇인가 힘든 일이 생긴다면, 이를테면 프로젝트에 이슈가 생겨서 보고가 많이 잡히고 내게 부정적인 피드백이 오지 않을까 불안해질 때면 이 말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우리 F형들에게 이 말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쟤가 뭐라 하든 쫄지 마. XX.
그냥 부딪히라고!
(3)
사실 요즘 이 말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성향이 다양한 업무 담당자들을 보면서 왜 나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에 의연해져야 하는지 새삼 다시 깨닫고 있는 것이다.
내가 동료로서 많이 애정 하는 A사원님이 있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서 친구가 된 분인데 이 분은 늘 내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슈들이나 나의 실수로 인해 혼날까 봐, 고객사한테 욕먹을까 봐 등등을 걱정하는 내게 늘 그럴 수도 있다며 의연하게 넘길 용기를 주시는 분이다.
일전에 A사원님이 유관부서의 피드백을 잘못 이해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는 보고를 하였고 그로 인해 팀 간 논쟁이 있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 논의의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나의 팀장님께는 그냥 상황과 두 팀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는 사실만 전하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이 분을 개인적으로 많이 애정 했기 때문에 A사원님이 상사들에게 혼나거나 유관부서에게 욕을 먹지는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그 걱정되는 마음을 전하며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개인적으로 연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A사원님의 대답은 실로 아주 멋졌다.
“이미 엎질러진 일이고 욕을 먹어야 하면 욕을 먹어야죠. 잘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 부분은 제가 충분히 사과드려야 하는 부분이에요. 그렇지만 일 외적인 비난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뿐입니다.”
A사원님은 정말로 미움을 받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B과장님과는 일 할 때 많이 불편하다. B과장님은 어쩔 수 없는 실수(예를 들어 유관부서에서 공유된 정보로 과장님께서 보고를 하였는데 업데이트가 있어 보고 내용이 완전히 틀린 것이 된 경우 등)에도 지나치게 예민했다. 왜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자신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하냐며 모두를 비난할 때가 많았다. 물론 정보를 신중하게 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워낙 업데이트가 급하게 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저렇게까지 비난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저 업데이트가 최근에 되어 보고 내용이 틀렸다고 양해를 구하면 되는 부분인데도 굳이 사서 걱정을 하고 남들을 몰아붙여야 하나 싶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함께 일하는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이었고 그 과장님과 함께 무엇인가를 논의하거나 일하는 것을 꺼려했다.
B과장님은 단 하나의 미움이라도 받고 싶지 않아 모두에게 미움을 사게 된 것이다.
A사원님과 B과장님 중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가? 행복이 너무 거창하다면 누가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은가? 스트레스가 적을 것 같은가? 답은 당연 A사원님이다. A사원님은 자신이 받아야 하는 비판과 미움을 기꺼이 수용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반면 B과장님은 자신에게 어떠한 불이익이라도 생길까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욕하지 않을까 일어나지도 않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끌어안고 계셨다.
실제로 저 일이 있고 난 후 A사원님은 정식으로 진심을 다해 사과드렸고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싸우면서 큰다고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다툼이 있었던 상대방과 어느 정도 친해져 서로 돕고 배려하는 사이가 되었다.
(4)
이제 왜 나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에 당당히 맞서야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것은 나를 지나치게 괴롭히지 않기 위함이다. F형들은 생각과 감정이 아주 많다. 잘못한 부분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해결하면 그뿐인데 우리는 그것에 살을 붙여 받아들인다.
미움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불편함에 대한 거부감을 한가득 안고 살아간다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오히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강한 멘탈’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그저 미움을 받을 용기를 내는 것 그리고 그러한 성공 경험을 반복해 나가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일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움받을 용기를 내야 더 많은 일을 도전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겁내지 말고!
쫄지 마. F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