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홍작가 Sep 21. 2023

여름휴가 ‘3.7일 vs. 3주’만큼의 차이


 3.7일     

 

 2023년 기업이 정한 한국의 평균 여름휴가 기간이다. 작년의 3.6일보다 조금 는 거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휴가 기간을 길게 줬다. 300인 이상 기업은 평균 4.3일, 300인 미만 기업은 평균 3.6일이다. 별도의 하계휴가를 정하지 않은 기업도 10% 정도 된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우리가 아는

선진국 대부분이 연평균 3~4주

의 휴가를 받는단다.


 이걸 여름휴가에 2~3주, 크리스마스 때 1주씩 쓰는 경우가 흔하다.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등.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너희들, 이렇게 살고 있었어?!”     

 



 구체적으로 내가 사는 캐나다의 휴가 기간을 살펴봤다. 각 주(province)마다 다르지만 대개 연 3주 정도의 긴 휴가를 보장받는다. 평균 10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 70%는 4주 이상, 15년 근속한 노조원 3명 중 1명은 5주 휴가로 더 길어진다. 신입일 때는 2주 정도이다.      


  한국인이 나는 이런 캐나다가 부러운데, 캐나다인들은 자기들보다 훨씬 더 쉬는 프랑스인을 부러워한다. 유럽에는 프랑스처럼 캐나다보다 휴가가 1~2주 이상 긴 나라도 많다. 진짜다.     

 

"한 달이 통째로 휴가라고? 아니 진짜, 너희들, 이렇게 살고 있었어?!"
 




 한국도 유급휴가 기간 자체는 연간 15일 정도 된다. 하지만 이 절반 정도만 겨우 쓴다. 신입사원도 30일 유급휴가 기간을 꼬박 다 채우는 유럽 등 다른 나라와는 판이하게 다른 꼴이다.      


 한국 직장인이 유급휴가를 다 채우지 못하는 이유 1, 2순위는 눈치가 보이고 대체할 인력이 없어서라고 한다. 아이고야...     



 캐나다에 살며 보니 8시 출근 4시 퇴근인 일터가 대부분이다. ‘4,시,에,퇴,근,이,라,니,그,것,도,칼,퇴,라,니!’     


 퇴근 후 긴 시간은 개인의 자유시간이고 가족과의 시간이지 일의 연장인 경우는 드물다.      


 시간이 이렇게 많으니 사람들은 꼭 휴가 기간이 아니어도 오후부터 쉬고 놀고 배우고 즐기며 산다.

그 부러운 문화, 바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인생들이다.      



 즐길 시간이 많은 만큼 동네에는 다양한 행사들이 연일 쏟아진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시정부 웹사이트 등에 하루 수십 건씩 되는 행사들이 공개되어 있다. 무료로 즐길거리들도 넘쳐난다. 이런 걸 검색해서 자주 다니는 게 내 일상이 됐다.      


 재즈 페스티벌이나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화려하고 규모 큰 축제도 있지만, 동네 연날리기 행사나 공원 화덕에서 피자 구워 먹는 마을 잔치처럼 소소한 행사가 더 많다. 동네 들판에서 좀비 아포칼립스 흉내 내기, 맨발로 민속춤 추기처럼 다양한 취향에 맞춰 소규모로 열리는 행사도 꽤 된다.      


 소소한 행사라 실망이냐고? Nope,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쉬고 즐기고 노는 게 대단히 특별하고 드문 일이 아니라 일상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서다.      


 오랜만에 날 잡아서 ‘어디 한번 죽도록 놀아보자! 오늘 뽕을 뽑자!’ 식으로 달려드는 한국의 치열한 놀이가 오히려 처연해 보인달까.      




 한국 100배 크기 땅에 한국 인구수 80% 미만이 사는 캐나다, 인구밀도가 이리 낮으니 행사마다 사람들이 너무 복작대지 않아서도 좋다.      


 다양하게, 여유롭게, 즐겁게 쉬고 놀며 사는 게 상식인 세상의 사람들,

 이러니 얼굴에 미소가 가시지 않을 수밖에.    



   

 평균 겨우 3.7일의 휴가를 가는 한국인에게 휴가의 의미는 무엇일까? 당신에게 휴가는 어떤 의미인가?     


 한국에서 심한 워커홀릭이던 나는 서른 중반부터야 겨우 휴가를 만들어 쉬기 시작했다. 며칠 휴가를 다녀오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강의할 때 에너지가 더 넘치고 창의력과 논리성이 더 발현됐다. 주변에 내가 깨달은 휴가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며칠 놀다 오니까 일이 더 잘 되는 것 같아. 휴가는 일에도 필수야!”     


 그렇다. 나는 휴가까지도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다. 온통 일, 일, 일이던 내 삶에는

쉰다는 것은 일상에는 없는 드물고 특별한 이벤트였다. 그것도 일을 위한 이벤트.     

 

 쉬는 게 불안했고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했다. 이러는 나를 직장에서는 추켜세웠다.      


 비단 나만의 얘기가 아닐 것이다.     

 



 더 빡세게 살라고 강의하는 강사가 인기고

게으른 사람 반성하라는 책들이 잘 팔리는 한국. 자기를 더 채찍질하라는 말에 안 그래도 피곤한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를 더 갈아넣을 다짐을 하는 나라.


한국은 피곤함이 권장되고 피곤함이 익숙한 사회다.      

 

 "너를 갈아 넣어 열심히 일해. 그러다 미치지는 않게 3.7일쯤 쉬고 와서 다시 열심히 갈아 넣으렴!"    

 



 휴가 기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계속 자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단다. 평소 얼마나 지쳤으면 이럴까?      



   

 B급 감성 영화를 좋아하는데, 최근 넷플릭스에서 일본 호러 코미디 <ZOM100>을 재밌게 봤다. 미친 상사놈, 미친 야근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하루아침에 좀비 세상이 되자 출근 안 해도 된다며 너무도 행복해한다. 웃프다. 한국에서 찍었어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을 법하다.      

 

 쉘터라고 찾아간 수족관에서는 그 미친 상사놈이 다시 회사처럼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다시 노역을 하게 된 주인공은 ‘이렇게 사는 수밖엔 없나 봐’라고 생각하며 주저앉는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다. 수족관을 찾아 유랑하던 때 느꼈던 자유와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도 있다. 좁은 수족관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틀을 벗어날 용기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다행히 주인공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족관 울타리를 벗어나 행복을 찾는다)     

 

 우리가 한국이라는 좁은 수족관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캐나다홍작가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ongwriter2019/



이전 05화 갑질 회사 노예 사원으로 살지 않으련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