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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Jul 28. 2024

크루즈 디에즈-RGB, 세기의 컬러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아이가 여름방학을 했다. 방학동안 하고 싶은 것을 물었더니, 미술관을 가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와 아들의 평일 미술관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첫 번째 미술관 나들이로 예술의 전당을 갔다. 나 혼자라면 뭉크전을 봤을 텐데, 음울한 분위기의 뭉크 그림을 아이가 좋아하지 않을 거 같았다. 뭉크는 '절규'만 알고 있는 아이에게 전시 작품을 몇 점 보여줬더니 역시나 무서워했다. 아이가 가장 관심을 보인 크루즈 디에즈 전을 보기로 했다.


예술의 전당을 간다면 세계음악분수는 꼭 봐야지.

평일에는 12:00~13:00, 18:00~19:00 두 번만 하기 때문에 12시에 맞추어 방문했다.

예술의 전당 세계음악분수

낮 12시 야외는 너무 더웠지만, 분수 앞은 견딜만했다.


크루즈 디에즈 전시 입구

크루즈 디에즈 전시는 예술의 전당 로비에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 우리는 세예박물관에 있는 한식당에서 점심 식사도 하고, 음악분수도 보고, 다시 돌아왔다.

크루즈 디에즈 전시 시작

크루즈 디에즈는 옵아트 작가에 해당된다. 옵아트, 혹 옵티컬 아트는 시각적 착시에 의해 움직이는 효과를 보이는 예술 경향을 말하며 대표적인 작가로 바자렐리, 라일리를 들 수 있다. 옵아트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면 실제로 작품이 움직이는 것은 키네틱 아트이다. 움직임이라는 주제가 같기에 키네틱아트를 옵아트의 한 종류라고 하기도 하고 옵아트에서 한 단계 더 나가간 예술이라고도 말한다. 크루즈 디에즈는 옵아트 작가이며 키네틱 아트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옵아트가 그림이 움직이는 착시 효과를 만들어낸다면 크로즈 디에즈는 색을 주제로 하여 색이 변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작업을 추구한다.


크루즈 디에즈 브로셔


크루즈의 작업은 주로 가는 색 막대가 겹쳐지고 그 안에 다른 형태가 무아레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무아레(moiré)는 간섭무늬, 물결무늬, 격자무늬라고도 하며,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모양을 여러 번 거듭하여 합쳐졌을 때, 이러한 주기의 차이에 따라 시각적으로 만들어지는 줄무늬를 말한다.


오늘날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간단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크루즈가 이 작업을 시작한 1950년대에는 수작업이었다. 목공으로 막대를 만들고 원하는 색을 칠 하거나 프린트해서 부착했다. 보색, 색간섭으로 인한 색이 변화를 구상하고 아이디어가 시각적으로 구현되도록 제작하는데 한 달 정도가 걸렸다. 완성된 작품이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실패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23년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작가는 8~9세 정도 나이의 어느 날 오렌지 색으로 빛나는 석양을 보며 색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전부터 색 작업을 시작하여, 이후 출판 업계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하기도 했고, 컴퓨터 그래픽에 AI가 도입된 최근, 2019년에 작고하시기 전까지 색을 주제로 꾸준히 작업해 왔다. 아날로그 시대부터 시작하여,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을 함께 지켜봤기에 빛의 삼원색 RGB와 염료의 삼원색인 CMYK까지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했을 것이다.


도슨트 설명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우리는 1시에 입장해서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1시 50분 도슨트 설명을 들었다. 도슨트 투어는 약 50분 정도 걸렸고, 투어 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총 관람시간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도슨트 설명이 꽤 알찼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빛의 삼원색부터 색의 보색 관계, 크루즈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어린이용 프로그램도 별도로 있는 것 같은데, 무료 도슨트 설명만 들어도 충분하다.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누구보다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관람객 중 유일한 초등학생이어서 같은 관람자분들이 많이 예뻐해 주셨다.


전시는 색포화, 평면 작품, 색간섭 환경, 색채 경험 프로그램 네 개로 구성된다.


색포화

색포화는 RGB, 즉 빨간, 파란, 녹색 공간 속으로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시신경이 색 공간에 적응하고 다른 색을 바라보았을 때 실제 색과 다른 색으로 보이는 현상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제 색 공간에서 체험해 보는 것은 처음인 신기한 경험이었다.


평면 작품

두 번째 공간인 평면 작품이다. 크루즈가 꾸준히 해 온 색 막대 작업이다. 보색과 색의 간섭으로 같은 색도 계속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앞에서 보거나, 멀리서 보거나, 옆에서 보거나.

평면 작품


색간섭 환경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공간이다. 눈이 좀 현란하긴 하다. 특히 흰 옷을 입었다면 보호색을 입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색간섭환경


색채 경험 프로그램

작가의 작품을 직접 만들어봄으로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본인의 작품을 만들고 QR 코드로 저장할 수 있다. 아이가 전시를 가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고, 좋아했던 프로그램이다.

관람자의 인터랙티브 한 경험을 위해 작가가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색채 경험 프로그램
색채 경험 프로그램




아이가 절대 빠지지 않는 굿즈 구경. 크루즈 디에즈 전시에는 굿즈가 많지 않았다. 마그네틱도 디자인이 하나뿐이고 작품 카드, 도록 정도가 전부였다. 기념 티셔츠는 어린이용 S와 성인용 L 사이즈 두 개가 전부였고, 아이는 티셔츠를 구입했다.

크루즈 디에즈 굿즈 티셔츠를 입고


크루즈 디에즈(1923~2019)는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주로 프랑스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작년이 탄생 100주년이었기에 작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크루즈 디에즈 전시를 기획하고 있으며 이번 예술의 전당 전시도 그의 일환이다. 사실, 나에게 크루즈 디에즈는 생소한 작가였다.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그의 작품이 올림픽공원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아직 남아 있다고 하니 다시 올림픽공원을 갈 때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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