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미국의 지방주의 회화, <아메리칸 고딕>이다. 그림 속 여인의 긴 목과 튀어나온 눈이 갑상샘기능항진증 환자로 보인다고 한다.
튈프 박사는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헤르페스'라는 이름을 붙인 의사라고 한다. 벌레가 피부 위를 기어 다니는 것처럼 바이러스가 퍼져 나간다는 의미에서 기어간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헤르페스'로 지었다. 또한 각기병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 뛰어난 의사였고, 암스테르담에서 늦은 시간에도 약을 살 수 있게 저녁 늦게까지 약국을 운영하며 빈민들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인간적인 의사였다. 여러 의과대학 도서관에는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모작이 걸려있는데, 훌륭한 예술작품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흐의 정신병을 치료해 준 또 다른 의사인 가셰 박사이다. 당시는 전공이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았지만 가셰 박사가 우울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보아 그는 정신과 의사였다. 가쉐박사 역시 우울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는 진료보다는 그림에 더 관심이 많았던 독특한 의사였다. 이 그림은 감사의 뜻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초상화에 대한 고흐의 실험작이었다. 고흐는 사진 같은 초상화가 아니라 모델의 감정과 성격이 드러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이 초상화는 가셰 박사의 우울한 감정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도 유명했었다.
유럽여행 중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가셰 박사의 초상이다. 사이토 료에이가 구입한 후로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 작품은 또 다른 가셰 박사의 초상이다. 오르세 미술관 측은 고흐가 처음 그린 그림은 본인이 소장하고 한 장 더 그려서 가셰 박사에서 선물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셰 박사의 아들이 그 그림을 오르세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위작 논란이 있다. 가셰 박사가 고흐의 그림을 모사한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진품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진실을 밝힐 고흐와 가셰 박사는 없으니 진위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고흐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적은 부분이 많이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의료과실이었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가셰 박사는 고흐의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지 않고 상처를 소독만 해주고 돌아갔다고 한다. 당시 고흐의 복부에 남아 있던 총알이 염증을 일으켰고,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혹은 계속된 출혈로 인한 출혈성 쇼크였을 수도 있다.
한때 압생트 속 투존이라는 성분이 신경에 영향을 미치고, 인상주의 시대 압생트를 장기간 마신 화가들이 환각을 보게 되고 서서히 중독되어 시신경이 파괴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특히 고흐 그림은 압생트에 중독된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이라고 한다.
그에 대해 저자는 실제로 투존의 독성은 얼마 되지 않으며, 압생트에는 미량의 투존이 들어있어 중독될 염려가 없다고 한다. 압생트 인기에 밀린 와인업자들의 로비였다는 설도 있다고. 1997년에는 별 주변에 코로나가 보일 정도가 되려면 182리터 이상의 압생트를 단번에 마셔야 한다는 논문도 발표되었다. 그 정도의 술을 한꺼번에 마실수도 없고, 그렇게 마시면 그림을 그릴 수도 없다고 한다.
2005년 피렌체 여행에서 방문한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미켈란젤로 <다비드>이다. 다비드 상을 빙 둘러 의자가 있고, 그 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때려 부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으니 다비드 증후군은 없었나 보다.
정신과 질환 중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는 메아리증 '에코라리아(echolalia)', 심장초음파 검사 장비를 '에코카디오그램(echocardiogram)'이라고 한다.
페스트가 유럽에 전염된 경로로 언급된 학설 중 몽골 제국이 있다. 1347년 칭기즈칸의 장남이 세운 킵차크 칸국 기마병이 크림반도 남부 카파를 포위하고 있었을 때이다. 몽골군은 적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 중앙아시아에서 페스트로 죽은 시신을 가지고 와 투석기로 성안으로 던져 넣고 철군했다. 카파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무역기지였는데, 제노바 상인들은 몽골군이 철군한 틈에 이탈리아로 도망쳤다. 이때 쥐와 벼룩도 이들과 함께 이동했고 페스트가 유럽 전역에 퍼졌다는 것이다.
이 책 출판연도가 2017년이라 코로나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코로나를 겪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전염병에 대한 내용을 관심 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