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by 철인이십팔호

관중이라는 인물은 그 출생부터 미스터리한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그 에피소드란 말(午)의 해, 말의 달, 말의 일, 말의 시에 태어난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인데, 음력 5월 5일 정오에 태어났다는 뜻이고 그 이유로 어릴 때 이름은 망종(芒種: 수염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 좋은 때)으로 불렸다고 한다. 점쟁이는 사주에 5개의 말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용 아니면 호랑이로 크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에게 출생의 비밀을 말하고 이름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천하의 씨 뿌리는 백성들을 관장하는 인물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관이오(管夷吾)라 지었다는 것이다. 실제 관중(管仲: ~ B.C. 645)이라는 호칭은 관씨 집안둘째 아들이라는 뜻인데, 중은 자(字)이고 이오라는 이름이 본명인 셈이다. 관중의 친구인 포숙아(鮑叔牙) 역시 말 그대로 포씨 집안 숙씨 즉 셋째 아들로 본명이 아라는 뜻이다.


그럼 관중은 원래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정확한 근거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기] 「관안열전」을 보면 관중의 말을 직접 인용하여 “내가 예전에 곤궁할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익을 나눌 때 내가 더 많이 차지하곤 했다. 그럼에도 포숙이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것은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관포지교의 실체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관중이 원래 상인 출신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재미있는 내용은 관포지교의 또 다른 내용이다. 관중은 “세 번이나 벼슬길에 올라 세 번 다 군주에게 쫓겨나도 자신을 못났다고 여기지 않은 것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포숙아의 현명함을 소개하고 더 나아가 관중 자신이 “세 번 싸움에 나가 모두 도망쳤을 때도 노모가 있기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에 겁쟁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고백함으로써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라는 그 유명한 관포지교의 고사가 만들어진다.


위의 에피소드만으로 관중의 원래 모습을 재구성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중요한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관중과 포숙의 관계가 대단히 일방적이라는 이미지이다. 관중은 계속 자신의 사적 욕망에 몰두하고 이로 인해 인생의 실패를 거듭하는 불운을 자초할 정도로 탐욕적이고 근시안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반면 관중의 이러한 이기적인 행동에 끊임없이 관용을 베푸는 포숙의 모습은 의아할 정도로 큰 포용력을 보여주며, 그 배경에 포숙이 관중보다 훨씬 더 좋은 사회적 조건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 역시 추론할 수 있다. 즉 포숙이 관중의 재정적 후원자 또는 멘토(mentor)와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만약 포숙과 같이 배려와 포용력을 갖춘 인물과 교유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주변에 모두 자신과 똑같은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과만 어울렸다면 관중의 인생은 어느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결국 실패로 끝났을 수 있다.


더 중요한 단서는 관중이 원래 ‘예의염치’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뻔뻔하고 탐욕적인 사적 행위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훗날 제나라 재상이 될 운명을 가졌지만 장사-출사-종군이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관중이 경험과 학습의 과정에서 명확한 목표와 일관된 관점을 가졌기보다 세 가지 인생경로를 거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직 미완의 상태였다는 점이다. 물론 세 가지 인생경로에서 거듭되는 실패와 불운을 회고하는 관중의 모습에서 왜 그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관중의 모습 이면에 놓인 그의 능력과 야망을 정확히 간파했던 포숙의 안목과 통찰력이 대조될 수 있다. 즉 포숙은 사적 행위자로서 관중보다 공적 행위자로서 관중의 잠재력에 더 주목했던 것이다. 친구(親舊)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은 훗날 공자의 평가에서도 일정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논어] 「헌문」에서 최초의 춘추패자인 “제환공이 바른 도리를 지키고 술수를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인 제후들을 규합하면서도 군사력으로 하지 않은 것은 관중 덕분”이라는 공자의 평가에서 관중의 진면목이 공적 행위자(仁人)로의 역할에서 찾아질 수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포숙의 안목이 미완의 대기에 불과한 관중의 잠재력을 어떻게 그리도 정확히 보았던 것인지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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