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은 포숙과 친밀했고 두 사람과 의기투합한 또 다른 동지로 소홀(召忽)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소홀이란 인물이 정확히 언제부터 이들과 교류하고 동지적인 친밀성과 협력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당시 제나라 내부사정을 밝혀주고 있는 자료로 후대 제작된 [관자]의 내용으로부터 추측해보면, 아마도 세 사람은 원래 무명의 존재였기 때문에 작은 나라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정말 앞서 말했듯이 관중, 포숙, 소홀 모두가 경제적 이유나 정치적 출사 또는 군사적 종군 등의 이유였는지 어떻든 제나라로 유입된 외부 이방인들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세 사람이 훗날 제나라 조정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일종의 트로이카를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소홀이 “제나라에서 우리 세 사람을 비유하면 솥의 다리와 같아서 하나라도 없으면 설 수가 없다”고 자신한 말을 보면, 당시 제나라는 거성귀족인 고(高)씨와 국(國)씨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나라 시조인 강태공의 개성만큼이나 이방인들인 관중-포숙-소홀도 실력을 인정받아 등용되었고 세 사람이 트라이앵글 오펜스(triangle offense)를 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에토스의 국가였음이 분명하다.
그 극적인 증거는 당대 제나라 권력승계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제나라 희공(齊僖公)에게 공자 제아(諸兒; 훗날 제양공), 공자 규(糾), 공자 소백(小白) 세 아들이 있었는데 제희공이 포숙에게 공자 소백(훗날 제환공)을 따르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포숙이 이를 거부하고 출근하지 않자 관중이 소홀과 함께 포숙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듣고 난 뒤 소홀이 포숙의 입장을 지지한 반면 관중은 포숙을 설득한다. 그 설득의 변은 “신하가 군주에게 힘을 다하지 않으면 믿어주지 않을 것이고 믿지 않으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사직은 안정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으로 결국 포숙으로 하여금 소백을 따르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포숙이 관중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관중의 조언에 따라 태도를 바꾼 것일까? 여기에는 각각의 개인적인 판단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우선 큰 아들인 공자 제아는 훗날 제양공(齊襄公)이 되는 인물이다. 이미 왕위계승자로의 위상을 확보한 자이고, 그 개성 역시 강렬하다. 특히 자신의 누이동생인 문강(文姜)과 있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문제는 문강이 노나라 환공의 아내로 출가한 뒤에도 그런 관계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훗날 드러나게 될 일이지만 제양공과 문강의 불륜은 결국 노환공(魯桓公)에게 발각되었고, 불륜발각에 따른 화근을 없애기 위해 제양공은 노환공을 국경에서 만나 술자리를 빙자해 결국 살해하고 만다. 그 사건은 제아 자신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였는지를 예단하게 한다. 더욱이 장자(長子)라는 위치에 놓인 이상 왕위계승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상태였기에 트로이카 역시 제아를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제나라 권력구조의 특성상 제아는 이미 제나라 대표 귀족들인 고씨와 국씨 세력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방인 출신인 삼총사 입장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선택은 분명해진다. 둘째 공자 규와 막내 공자 소백 중 어느 누구를 섬기느냐에 따라 현재의 처지와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희공이 포숙에게 공자 소백을 따르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포숙은 절망했던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상식적으로 막내아들인 공자 소백이 왕위를 계승하거나 유력한 세력가가 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자인 제양공이 왕위를 계승할 경우, 공자 소백은 목숨만 유지한 채 왕자로의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더구나 공자 소백은 사치스럽고 경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원래 부잣집 막둥이가 그렇듯이, 공자 소백 역시 자기만을 아는 철부지 망나니 막내 왕자의 전형이었다. 그래서 소홀은 소백이 결코 군주가 될 수 없기에 나가지 말 것을 주장했지만, 관중은 오히려 그 점을 정확히 파악했다. 즉 “(소백은) 자잘한 지혜가 없고 성질이 조급하지만 큰 뜻을 품고 있다. 나 이오가 아니고서는 소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언했듯이 여색을 좋아하고 이기적이지만, 구김살 없이 살아온 막내 왕자답게 백치와 같은 순수함과 호방한 기질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포숙은 좌절했지만, 관중은 그런 포숙을 설득했던 것이다.
이제 관중-포숙-소홀로 구성된 삼총사의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것은 제양공을 정점으로 재편될 권력구조에서 공자 규와 공자 소백을 각각의 꼭지로 연결하여 제양공의 강렬한 개성을 보다 안정적으로 견제하는 것이었다. 철저히 세 사람의 정치적 입지 공고화라는 맥락에서 접근하자면, 관중이 기획한 놀라운 내용이 드러난다. 관중이 포숙에게 소백을 보좌할 것을 설득한 것은 자기가 섬기는 공자 규가 군주가 되도 국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포숙이 사직을 안정시키는데 협력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다른 한편으로 소홀은 우직하게 자신이 섬기는 공자 규의 목숨을 빼앗으면 비록 천하를 얻는다고 해도 자신은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높은 충성도를 비친다. 도대체 제나라 내부 상황이 어떻기에 왕위계승자와 후계구도가 분명함에도 이러한 비장한 전망을 했던 것일까? 또 그 와중에 어느 한쪽으로만 트로이카의 운명을 몰아넣을 경우, 극히 위험천만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동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관중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관중은 “내가 죽을 상황은 사직이 무너지고 종묘가 사라지고 제사가 끊어지는 때이니, 이 세 가지가 아니라면 내가 살아야겠다. 내가 살아 있으면 제나라가 이로울 것이요 죽으면 제나라가 이롭지 못할 것”이라고 절규하듯 자신의 운명이 제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광오(狂傲)할 정도의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관중의 포석은 공자 규가 군주가 되거나 소백이 군주가 되거나 세 사람이 양쪽에 포진해야 실패의 위험성이 줄어든다는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세심한 안배를 엿볼 수 있다. 그 결과 훗날 제환공이 될 소백은 포숙의 보좌를 받고 그의 형 공자 규는 관중과 소홀이 보좌하게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안배가 효력을 발휘할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이다. 관건은 제양공의 유고(有故)라는 돌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