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상 공자 규와 소백 간 왕위경쟁에서 앞서 있었던 인물은 공자 규였다. 노나라는 제나라 바로 서쪽 옆에 위치해 있었기에 거리상으로도 가까웠고, 노장공이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 제나라 정국에 개입할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노장공의 국가적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반면 소백은 남쪽으로 망명한 거나라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었고, 제나라로 돌아가게 해 줄 정치적 후원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원래 망명객의 신세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공자 소백이라는 인물 자체가 가진 강한 개성, 특히 막내왕자로 태어나 어떤 고생도 하지 않았던 사치스럽고 이기적인 왕자에게 이국의 망명생활과 박대는 견디기 힘든 모멸감을 주었을 것이다(훗날 이 때의 원한을 제환공이 된 후 처절하게 갚아버린다. 바로 그 점이 패자의 진면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진흙탕을 빨리 벗어나려는 동기를 부여했을 것이다.
자, 이제 왕위계승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제나라 수도에 입성하여 깃발을 꽂느냐는 시험이었다. 시간싸움이자 눈치싸움이기도 했다. 이런 싸움에는 사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뻔뻔하게 도둑질하더라도 깃발을 먼저 꽂는 자가 승자가 된다! 노장공은 이 시험에서 자신이 후원하는 공자 규가 승리하도록 가장 빠른 방법, 즉 정예 병사들로 공자 규를 호위하게 해서 제나라 수도로 곧바로 입성하면 어느 누구도 공자 규의 왕위계승에 도전할 수 없을 것으로 낙관하고 전광석화처럼 해치우려고 공자 규를 출발시켰다. 소백도 포숙의 도움을 받아 준비하여 출발한다.
준비가 거창했던 공자 규와 준비가 단출했던 공자 소백이 출발의 조건은 달랐지만 제반 조건의 대소 차이로 말미암았는지 어쨌든 제나라 국경에서 마주친다. 여기에서 양 진영은 상호 경쟁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제거하는 전투를 벌인다. 물론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한 승자가 되는 법이니 그럴 수 있지만, 친형제 간임에도 왕위를 두고 생사를 건 전투를 벌인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다. 아마도 춘추시대의 풍습이라는 점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을 듯하지만, 중국역사를 보면 어느 왕조에서건 형제의 난은 피바람을 가져오는 볼썽사나운 모습이었음을 상기해보면 아주 낯선 장면도 아니다.
이 때 사건 전개과정은 [관자] 「대광」편을 보면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하나는 전투가 벌어지고 관중이 소백을 활로 쏘아 말에서 떨어뜨려 죽였다고 확신함으로써 공자 규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사실 소백이 관중의 활을 혁대에 맞았음에도 죽은 척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공자 규의 진영에서는 승리에 도취되어 그날 저녁 느긋하게 잔치를 가져갔고, 소백 진영 역시 속이기 위해서 그대로 장례를 치룬다는 소문을 낸다. 장막을 드리운 채 소백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백이 혼자 몰래 말을 갈아타고 제나라 수도로 들어가 고씨와 국씨에게 먼저 도착했음을 확인받고, 다음날 아침 제나라 수도의 성곽에 공자 소백의 깃발이 드날리는 장면이 온 세상에 알려지면서 왕위계승 경쟁은 소백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다른 한 버전은 제양공 사후 공자 규가 왕위를 계승한 뒤 소백을 소환했는데, 이 때 소백이 제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포숙이 왜 안돌아가려고 하는지 묻자 소백이 관중의 지혜와 소홀의 용맹함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 둘을 감당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고, 이를 포숙이 해결하겠다고 나서서 결국 제나라로 향했다고 한다. 그리고서는 포숙이 앞장서서 공자 규를 쫓아 전차를 몰았고 관중이 소백에게 활을 쏘았다는 것이다. 물론 결론은 공자 규와 관중, 소홀이 모두 노나라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역사서인 [춘추좌전]에는 단지 노장공이 공자 규를 제나라로 돌려보내려고 제나라를 정벌했는데 건시(乾時)라는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노장공이 대패함으로써 공자 규와 함께 노나라로 회군했다는 간단한 기록뿐이다. 따라서 어떤 내용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자 소백이 승자가 되어 제나라 군주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관중이 소백을 죽이기 위해 활을 쏜 것 역시 사실이다. 승리한 후 소백은 공자 규의 처분을 노나라에 요구한다. 특히 소백은 자신에게 활을 쏜 관중에 대한 분노와 처벌에 집착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평소 제나라에 있을 때부터 자신을 지혜가 없고 이기적이고 사치스러운 막내왕자로 취급한데다 왕위계승 경쟁에서 작은 형을 위해서 소백 자신에게 직접 활을 겨누어 죽이려고 했으니, 얼마나 원한에 사무치겠는가! 다행히 혁대에 맞아 죽지 않는 천운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사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당연히 소백 입장에서는 라이벌인 형 공자 규의 제거뿐만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데 가장 앞장섰던 관중을 주살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권위를 회복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백은 노나라에 공자 규가 자기 형제라서 차마 죽이질 못하니 노나라 군주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되 소홀과 관중이야말로 자신에게 원수 같은 놈들이라서 죽여 젓갈(醢)을 담아야 분을 풀릴 것 같다고 산채로 보내라고 협박한다. [사기] 「제태공세가」에 기록된 제환공의 말이니 아마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관중은 이미 노나라에서건 제나라에서건 죽은 목숨이었다. 이 때 관중을 구원하는 자가 바로 포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