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렴치함이 불러온
소용돌이의 제나라

by 철인이십팔호

제희공 사후 제나라의 왕이 된 제아(양공)는 누이동생 문강(文姜)과의 간통을 들키자 역사 팽생(彭生)을 동원해 노환공을 살해한다. 이 사건의 전모를 기록한 역사서의 내용은 아주 이상하다. “(노나라) 환공이 제나라 후작과 낙수 가에서 만나고 바로 부인 문강과 함께 제나라로 갔다. (부인 문강이) 제나라 후작과 통정하고 있으므로 환공이 이를 꾸짖었다. (부인이) 그것을 (제나라 후작에게) 고했다. 여름인 4월 병자일에 환공을 초대하여 제나라 공자 팽생에게 환공을 수레에 태우게 했는데 환공이 수레에서 훙거했다.”는 기사(記事)는 노환공과 제양공이 만찬을 치루고 노환공을 부축해서 수레에 태웠는데 환공이 수레에서 죽었다는 사실만을 간단히 전한다. 분명히 노환공이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되어 이를 꾸짖고 그 당사자인 제양공을 만난 상황이라면, 팽팽한 긴장감과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 예상되었는데, 갑자기 술을 먹고 제나라 출신 팽생에게 부축 받아 수레에 탄 노환공이 수레에서 죽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실체는 다른 역사서에 소개된다. 춘추전국 시대의 제나라 역사를 정리해 놓은 [사기] 「제태공세가」에 “제양공은 노환공과 술을 마시며 그를 몹시 취하게 만든 다음 역사 팽생을 시켜 환공을 안아 수레에 실으면서 갈비뼈를 부러뜨려 죽이도록 하였다. 노환공은 수레에서 내려졌을 때 이미 죽어 있었다”는 끔찍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노환공은 살해당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춘추시대가 얼마나 파렴치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고, 그래서 염치의 덕목이 더욱 간절했던 것 아닐까 하는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오히려 더 이상한 내용은 자기 나라 군주가 살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노나라 신하들이 제나라에 취한 석연치 않은 태도이다. 군주의 황망한 죽음과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지만, 제나라의 압도적인 국력과 제양공의 포악함에 대응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입장은 자기들 군주인 노환공조차 제양공의 위력을 두려워하여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다가 제양공의 초대를 거부하지 못하고 여기 와서 예의로 우호관계를 닦았는데도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허물을 돌릴 바가 없다고 하면서 다른 제후들에게 체면이 설 수 없으니 살인자인 팽생만이라도 처벌해달라고 제양공에게 간청하는 것이었다. 제양공 역시 팽생의 처벌로 마무리함으로써 노환공의 죽음으로 모든 진실이 덮여버린다. 제나라 군주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죽음을 자초한 노나라 군주의 행위가 예(禮)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자기변명과 함께 이에 상응하는 예를 보여 달라는 요구만으로 복수를 마무리하는 소극적인 노나라 입장과 달리 원인 제공자인 문강의 태도는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하다. 남매 간 근친상간이라는 불미스러운 일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제양공과 모의하여 불륜행위를 적극적으로 은폐해버린 셈이 되었다.


문강의 당당함을 보면서 이를 춘추시대의 진취성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아니면 파렴치로 평가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그렇게 보면 당대 좋은 세상을 고민하고 꿈꾼 자들이라면 바로 이렇게 불륜과 패륜이 교차하면서 노골적으로 세상의 모든 기준을 엎어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제나라 내부상황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 자신들의 청사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관중-포숙-소홀은 이러한 상황을 예단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제양공의 패륜적 행위가 당연히 노환공에게 그친 것이 아니라 제나라 통치에도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나라 정국의 소용돌이를 가져온 시작은 제양공 시해 사건이다. 제양공이 당시 국경을 수비하던 연칭과 관지보라는 신하에게 이미 약속했던 근무교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불만을 품은 두 사람은 제양공 시해 계획을 꾸민다.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자신의 군주를 시해하려고 계획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 단서가 연결되어 있는데, 당시 연칭의 사촌누이가 제양공의 후궁으로 그닥 사랑받지 못하고 있던 실정이었고 이로 인해 연칭 자신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불만이 팽배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제양공의 사촌동생 공손무지(제희공의 동생 이중년의 아들, 제양공과 공손무지는 사촌 간)는 큰집 두 형인 공자 규와 소백과 달리 제양공의 폭정을 바라보며 왕위를 노리고 있던 음흉한 인물이었다.(물론 왕이 될 수 있는 실력이 있을지는 별개로) 그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사적 복수심 때문이었다. 공손무지는 백부 제희공한테 총애를 받아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높은 작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사촌 형인 제양공이 즉위하면서 강등시켜 버렸던 것이다.


사실 제양공 입장에서는 공손무지의 작위와 대우가 지나친 면이 분명히 보였을 것이다.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조정 내 권력서열 역시 재편되는 것이 일상사이고, 공손무지는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몸을 낮추어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안하무인으로 버릇없이 성장했던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보다 항렬도 높고 성격도 더 괴팍하고 안하무인이며 정작 새 국왕인 제양공이었다. 결국 공손무지는 바로 국경의 수비군을 관장하고 있던 연칭에게 접근해서 그들을 끌어들여 궁정 쿠데타를 기획한다. 그 유인책은 자신을 도와 제양공을 죽이고 쿠데타에 성공하여 왕이 되게 해준다면, 제양공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연칭의 사촌누이를 자기 부인으로 삼겠다는 약속이었다. 결국 두 신하는 사적 감정으로부터 출발한 복수심과 탐욕으로 사냥터에서 제양공을 살해한다. 제양공의 포악함과 파렴치함, 공손무지의 음흉함과 탐욕, 그리고 신하의 의무를 저버린 연칭과 관지보의 불만과 복수심. 이 모두 공적 행위자여야 할 자리에 사적 욕망에 함몰된 소인배들이 들어선 결과였으니! 모두들 자신의 죽음을 자초한 셈이었다.


사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도 제양공의 정치가 문란해질 것을 당시 정국 참여자들은 예견하고 있었던 듯하다. 제양공이 군주가 되자 정치가 무질서해지는 양상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포숙이 “군주가 백성을 다스림이 절제가 없으니 어지러워질 것”으로 우려하면서 공자 소백을 받들어 거나라로 달아났다고 한다. 결국 제양공이 시해되는 난리가 일어나자 관중과 소홀도 공자 규를 받들어 노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이미 문강과 불륜을 저질렀던 제양공의 뻔뻔함을 생각해 보면, 노환공까지 살해할 정도로 무절제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제나라를 통치하는 일 역시 무절제하고 무질서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상황은 더 악화된다. 공손무지 역시 옹름이라는 신하에게 살해되면서 제나라에 권력공백이 발생하고 만다. 제나라 정국은 군주 유고라는 초유의 상황에 놓이지만, 왕위를 계승할 당사자들은 이미 국외 망명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제나라의 유력가문인 국씨와 고씨가 차기 왕위계승자를 결정하기 위해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어느 누구 편을 들지 않고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명분하에 망명 중인 두 왕자 중 가장 먼저 제나라로 들어오는 사람이 군주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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