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성(arêtè)을 존중한 우정(友情)

by 철인이십팔호

장면은 다시 노나라 내부로 돌아간다. 노장공은 공자 규-관중-소홀의 처리를 두고 고심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복수를 대신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망명왕자를 더 이상 데리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왕위 경쟁에서 승리한 제나라 소백이 당장 공자 규와 관중, 소홀의 처벌을 원하고 있는 마당이었다. 마냥 그들을 감싸고 후원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제나라와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도 소백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판이다.


공자 규의 진영 역시 동일한 고민에 빠진다. 더 이상 노장공의 후원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되었고, 어떠한 희망과 기대도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노장공의 개인적인 배려로 소백이 죽을 때까지 노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거나, 다른 나라로 다시 망명을 떠나거나 아니면 제나라로 소환되거나. 죽거나 까무러치거나 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장공의 배려를 기대하기에는 더 이상 그들 자신이 노장공의 원한과 복수를 풀어줄 쓸모가 없어진 상태였고, 다른 나라로 망명한다는 것 또한 어느 것도 보장받을 수 없는 불확실한 것이었다. 결국 선택은 제나라로 소환되는 것뿐. 소환되었을 경우 공자 규는 몰라도 소홀과 관중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었다. 죽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 규도 고민에 빠진 셈이다. 불행히 그 자신은 동생 소백이나 노장공의 배려가 없다면 신하들을 살려줄 능력이 전혀 없다. 자신이 살고자 신하들을 방치할 것인지... 쓸모없는 자신에게 이러한 관용을 베풀 자가 과연 있을지...


특히 관중의 생사 여부가 가장 관심거리이다. 앞서 말했듯이 평소 제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가 살아야 한다고 큰소리쳤던 인물이다. 정말 그 점을 입증할 수 있을까? 바로 그 해답을 제시한 자는 의외로 포숙이다. 역사서인 [춘추좌전]에는 포숙이 노나라에 공자 규를 죽일 것을 요구하고, 관중과 소홀의 경우 소백의 원수이기에 산채로 인수해서 제나라에서 처리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나라에서 공자 규를 생두라는 곳에서 죽이자 소홀이 따라 자결하고 관중은 묶여 호송되다가 중간에 포숙이 결박을 풀어주고 소백에게 재상으로 삼을 것을 추천하여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아마 선후관계나 진실여부는 다르겠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기에 역사서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관자] 「대광」과 「소광」편을 보면, 이 간단하게 기록된 사실 즉 소백이 제나라 군주가 되면서 그의 측근인 포숙을 재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활로 쏘아 죽이려고 했던 관중이 재상이 되었던 사건의 전모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소백이 거나라에서 제나라로 돌아와서 포숙을 재상을 삼으려고 했는데(즉 왕위계승 경쟁에서 승리한 뒤, 포숙을 재상의 반열에 올리고 정치를 위임하려고 했는데), 포숙이 사양하면서 반드시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면 적임자야말로 관이오 뿐이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내용에서도 소백이 포숙에게 사직을 안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묻자 관중과 소홀을 얻으면 사직이 안정될 수 있다는 대화가 오간다.


도대체 이 무슨 상황전개란 말인가? 소백이야 제양공 시해-공순무지 살해-공자 규 죽음으로 이어지는 권력공백과 투쟁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제나라 왕이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제나라의 정국안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의 고씨와 국씨 뿐만 아니라 포숙과 같이 생사를 같이 했던 측근과 동지들이 자신을 위해 제나라 사직을 안정시켜 주어야 하는데, 뜬금없이 자신이 왕 되는 것을 결사반대하고 죽이려고 했던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야 제나라 사직이 보존된다니!


어떤 맥락에서건 소백이 왕이 되었을 때, 포숙은 자신의 출세보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관중을 추천했다는 점은 포숙과 관중의 친밀함을 단순한 우정이나 의리(?)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상황을 늘 관중에게 관대했던 포숙의 우정으로 보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 분명히 소백과 포숙 모두 새로운 시대가 열릴 시점에서 제나라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당면과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해답으로 포숙이 관중을 천거한 것이었다. 따라서 포숙의 관중 천거는 포숙 자신이 완전한 공적(公的) 인간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고, 또 다른 공적 인간으로서 관중을 추천한 것일 뿐 자신의 친구라서 인정에 이끌린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철학적 원리로 중용(moderation)을 제기하고 그것의 실천덕목 중 하나로 탁월성(arete)을 제기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확증해주는 증거라고 소개했다.


훗날 춘추시대 패자의 정치라는 새로운 질서의 문을 열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비록 친구라 할지라도, 관중과 포숙 그리고 제환공이 될 소백까지 모두가 바로 이 탁월성을 바탕으로 한 상호연대와 존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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