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길-소백에서 제환공으로
재탄생

by 철인이십팔호

소백(제환공)과 관중의 첫 대면장면은 극적이다. [관자] 「대광」과 「소광」편에서 양자의 만남이 소개되어 있는데, 같은 내용이지만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먼저 [관자] 「대광」편에서는 관중이 오자 제환공이 다짜고짜 ‘사직을 안정시킬 수 있는가?’라고 묻고 이에 대한 관중의 대답 역시 ‘군주께서 패왕이 되시면 사직이 안정될 것이고 패왕이 안 되시면 사직이 안정될 수 없을 것’이라는 동문서답이었다. 양자의 개성이 잘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제환공은 포숙이 그렇게 간청한 관중의 등용을 시험하기 위해서 느닷없는 질문으로 시작했고, 아마도 그것은 제환공 자신이 관중을 마땅치 않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관중 역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사치와 향락으로 평생을 산 막내왕자가 과연 제왕이 될 만한 잠재력을 가진 그릇인지 입증할 단서를 찾았던 모양이다.


반면 [관자] 「소광」편에서는 제환공이 친히 교외에까지 나가서 관중을 맞이하고 관중 역시 죽을 채비를 하고 사람을 시켜 도끼를 들고 뒤에 서 있게 했다고 한다. 그러자 제환공이 도끼든 사람을 꾸짖어 쫓아 보내고 조정에서 예로 관중을 접대했다는 것이다. 조정으로 돌아온 뒤, 두 사람 간 석 잔의 술잔이 오간 뒤 제환공이 종묘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직에 희생을 올리는 제사를 지내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하면서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것으로 양자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런 제왕과 책사의 만남 과정은 일종의 후대에 각색된 상투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가지 다른 만남내용이 있었다 해도, 최종적으로 제환공과 관중의 첫 만남부터 ‘국가운영’(statecraft)에 대한 질의와 응답이 오간 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어느 것을 믿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면, [관자] 「대광」편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제환공이 아무리 포숙의 추천과 권고가 있었다 할지라도, 아직 패자로의 덕목은 커녕 제왕으로의 준비도 안 된 제환공이 관중에게 예를 다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중 역시 아직 미완의 대기로서 제환공이 평소처럼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제나라 군주로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진정한 제왕으로의 야심과 포부를 갖추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여부를 가려야 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관자] 「대광」편의 대화내용을 근거로 해서 제환공과 관중의 첫 만남을 계속 이어가보면, 제환공 즉 소백은 아직 제왕으로의 야심과 포부 그리고 목표 등이 바로서지도 못한 상태였다. 오히려 관중이 말한 패왕이 되려는 목표조차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소백은 관중에게 큰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제나라 사직의 안정만을 바랄 뿐이라고 대답하자, 관중은 계속 패왕이 될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소백의 대답은 기대 이하이다. 즉 패왕이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평생 놀고먹던 ‘생각 없는’ 막내왕자가 갑자기 고생했다고 해서 인생을 깨닫고 목표의식이 명확해졌겠는가?


여기에서 관중은 ‘제왕의 길’에 대한 소백의 ‘생각하기’(thinking)를 요구한다. 그것은 관중 자신에게도 가장 중요한 과제인 트로이카의 생존과 편의뿐만 아니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좋은 정치’의 직접적인 실행자인 ‘공적 인간’으로서 ‘제왕’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관중은 소백에게 “신이 공자 규를 위해 죽지 못한 것은 사직을 안정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이제 목숨을 구걸하다시피 해서 소백을 섬기게 된 이상 ‘사직의 안정’을 넘어서서 소백을 ‘패왕’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한다.


이 점에서 ‘생각’(thinking)과 ‘활동’(action)만이 인간다운 삶의 완성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생각과 활동이 일치하는 순간 정치적 각성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여 정치적 주체로 재탄생한다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논리를 적용하자면, 그 반응으로 소백이 관중을 잡기 위해 승부수로 던진 질문이야말로 비로소 제환공으로 재탄생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가져온 정치적 각성일 것이다. 그것은 “정사를 닦아 천하제후의 칭송을 듣고자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이다. 관중의 대답은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임을 계고함으로써, 향후 출현할 패자(覇者)의 실체가 실력과 규범의 두 면모로 구성되었음을 예단하게 한다.


관중은 현실의 이기적인 인간들에 의한 무질서와 혼란이라는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인식을 드러냈다. 이로부터 제왕으로서 정체성이 아직 혼란스러운 제환공에게 “패왕이 되고자 하면 (명령을 받들기 위해서) 내(이오)가 이 자리에 있겠습니다”라는 관중의 강렬한 자신감은 자신의 정치적 비전이 무엇이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keyword
이전 11화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