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관중의 현실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정의를 위하는 제후들이 제나라를 방문하지 않는 것과 정의를 좋아하는 협객들이 제나라에서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제나라의 보존과 영광이었다. 그뿐일까? 그러면 관중이 왜 춘추시대 패자의 정치라는 새로운 질서를 개막시킨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 현실목표의 이면에 놓인 최종적인 비전은 바로 ‘정의로운 제후와 협객’ 모두가 제나라를 앙모하고 제나라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려는 태도를 이끌어낼 정치권위의 탄생이다. 그가 바로 ‘패왕’으로 명명된 ‘패자’(覇者)이다. 그리고 패자의 존왕양이와 계절존망(繼絶存亡)이라는 책무의 이행으로 뒷받침되는 춘추의 질서는 실력과 규범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취한다.
당시 제후들 가운데 방자한 사람이 많아서 주 천자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상기한 목표와 비전 성취를 위해서는 이를 책무로 이행하는 자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주인공은 바로 제환공이 되어야 했다. 그 첫 단계는 제나라 내부의 정비, 곧 부국강병의 성취이고 이를 토대로 다음 단계로 관중은 제환공을 패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관중은 제환공에게 나라 안에서 상을 주어 격려하고 제후 가운데 일을 잘 처리하는 이들에게 값진 폐백으로 축하해주며 모든 일처리에 믿음을 줄 것을 요구한다. 그 결과 내부통치에서 습붕, 빈서무, 개방, 계우, 몽손 등에게 위임하고 이들을 각 제후에게 보내자 5년 만에 동이, 서융, 남만, 북적과 중원의 여러 제후가 와서 조공을 바치고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의 실력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환공은 규구(葵丘)에서 제후들과 회맹을 가져 패자로 추대되었고, 그 뒤 천하제후를 통솔하여 주나라 왕실을 안정시키고 병거로 6번 회합하고 승거로 3번 회합하는 등 9차례나 제후를 규합하여(九合諸侯), 천하를 통일된 질서로 바로잡았다(一匡 天下). 이에 천자인 주양왕(周襄王)이 문왕과 무왕의 종묘에 제사지낸 고기를 보내서 제환공을 위로하고 백구(伯舅)라고 높여 부르며 당 아래에 내려와서 천자의 명을 받드는 예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령한다.
이 얼마나 파격적인 조처인가! 물론 주양왕은 유명무실한 주 천자이기에 최초의 패자로 모든 제후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 낸 제환공이 무서웠을 것이다. 더구나 제멋대로 살아왔다지 않는가? 그러니 온갖 미사여구와 함께 제후들처럼 존경과 두려움이 깃든 태도를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동시에 제환공 역시 기고만장했을 것이다. 안하무인인 성격에다가 이 정도의 공적과 찬양을 받으면 자신의 시대가 열렸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상황에서 폭주할 위험성도 있다.
여기에서 공적 행위자로서 관중이라는 책사의 피땀이 다시 한 번 제환공을 각성시킨다. 주 천자의 명령이라도 예제의 보존을 책무로 하는 제환공이 예제의 파격을 받아들여서는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함은 어지러움의 근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제환공은 당 아래에 내려와서 예의바르게 주 천자의 명을 받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로 인해 더더욱 제환공의 권위가 공고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춘추좌전]의 “관중이 세세로 제사 받는 일은 마땅하다. 사양하는 마음으로 윗사람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고 평가는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관중에 대해서 왜 공자는 “관중은 그 사람 됨됨이의 그릇이 작고 검소하지도 않으며 예를 모른다”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앞서 공적 행위자로서 관중에 대한 찬양과 구별해서 사적 행위자로서 관중에 대한 비난이었다. 왜냐하면 관중이 제환공을 패자의 지위에 올려놓은 뒤 제나라 재상으로 인신의 극에 달하는 영광을 누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제환공은 관중에게 중보(仲父)라는 존칭을 사용했을 정도로 철저히 관중의 의중에 따랐고, 자신의 성공 뒤에 관중의 피땀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환공은 관중에게 허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사치와 향락을 허용했고, 관중 역시 이를 사양하지 않음으로써 공자가 제후만이 가질 수 있는 “삼귀(三歸)를 가지고 있으며, 가신의 직무를 겸하게 하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하겠는가?”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아마도 공자는 제환공-관중의 사적 욕망과 무절제함, 사치와 향락을 좇는 원래의 본성에 대해서 똑같은 자들이 끼리끼리 잘 만났다고 조롱했던 것일 수도 있다. 정말 그런 것일까? 공자의 조롱이 제환공-관중의 적나라한 실체를 정확히 드러낸 것일 수도 있지만, 제환공-관중의 업적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공적 행위자로서 제환공과 관중 vs 사적 개인으로서 제환공과 관중을 구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관중 역시 포숙에게 일방적으로 자기 욕심을 먼저 채웠던 젊은 시절의 모습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다. 다만 제환공이나 관중이나 생사를 넘나든 경험을 통해 ‘무엇이 좋은 정치’인지를 각성하고 정확히 행동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교묘히 은폐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결론 내리면 관중의 실체를 미처 다 보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정말 예제의 보존이라는 책무이행자로서 제환공을 보필하는 관중이 예제의 파격을 조장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적 욕망을 충족했던 것일까? 그러나 이면에 깔린 관중의 의도를 추론해보면, 제후들이 천자를 업신여기는 예제의 일탈을 제환공이 등장하여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제환공은 영원히 패자로서 도덕과 실력을 겸비한 권위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예제를 보존하여 질서를 회복하고 좋은 세상을 유지하는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 제환공 역시 여전히 사적 욕망으로 경도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어쩌면 제환공의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이 드러날 수 있다. 관중은 이 약점을 자신의 사적 욕망충족이라는 또 다른 도덕적 결함으로 메우려고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관중의 사리사욕으로 인해 제환공의 총명이 가려져 있다는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온통 집중되도록 한 것이다. 제환공을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끝까지 유지시켰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과거 자신이 쏜 화살에 맞아 죽을 뻔한 군주에 대한 보은이며, 1인자에 대한 2인자의 팔로워십(followership)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