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盟)-열국 간 관계의 연결고리

by 철인이십팔호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단서는 춘추시대 열국 간 관계를 유지해준 현실의 기제로서 동맹(盟)이다. 어원상으로 ‘盟’은 ‘희생(犧牲)의 피를 그릇에 받아 이를 돌려 마시며 해와 달에게 약속했던’ 일종의 행위로부터 파생된다. 애초에 ‘맹’은 초월적 권위와 체결한 약속인 동시에 당사자 간 체결한 약속이었다. 또한 약속체결에는 이미 신성성이 개입했기 때문에 약속한 바를 반드시 준수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규범으로 곧바로 전환된다. 더욱이 동맹의 규범성은 멸국병합의 명분으로 작동했을 만큼 강력했다.


춘추시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춘추좌씨전]이다. 보통 [춘추좌전] 또는 [좌전]으로 축약해 부른다. 그런데 [좌전]은 그 내용 전반에 걸쳐 춘추시대 열국 간 관계를 기술하고 평가하는데, 여기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고 주목해야 할 용어들은 ‘예’(禮)와 ‘맹’(盟)이다. [좌전]에는 ‘예’의 견지에서 129회의 특수 행위를 평가하고 있으며, 예를 암시하는 단락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동시에 ‘맹’에 대한 언급을 637회 담고 있고 국가 간 회합(會)의 상이한 형태들에 적합한 정교한 어휘를 사용하는 특징을 지닌다. 춘추시대를 가져온 서주(西周)의 멸망도 바로 이 ‘맹’에 의한 결과였다.


그런데 ‘맹’이란 용어를 번역할 경우, ‘동맹을 맺었다’라고 하기보다 ‘회맹했다’로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갑자기 두 국가가 동맹을 맺는 것이 아니라 두 국가가 일단 만난 다음에 실익을 따져 동맹을 맺는 것이 순서 아닐까? 따라서 ‘회’라는 용어 역시 ‘맹’과 병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느 경우가 ‘회합’으로만 끝나는 것이고 어느 경우가 ‘회합해서 동맹을 맺는’ 단계로 진입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랬을 때, ‘회’의 의미는 “무릇 군사를 출동시킬 때 서로 더불어 도모한 것은 급이라 말하고 서로 더불어 도모하지 않은 것은 회라고 한다”는 설명에서 보이듯이, ‘맹’ 이전의 불확정 상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가을 공이 진나라 후작과 송나라 공작과 위나라 후작과 정나라 백작과 조나라 백작과 흑양에서 회합했다”(秋, 公會晉候宋公衛候鄭伯曹伯于黑壤)”라는 [춘추] 경(經)의 기사에 대한 [좌전]의 설명은 “노선공(魯宣公)이 진성공(晉成公)의 즉위식에 대부에게조차 예방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나라 사람이 회합자리에서 선공을 잡았으므로 황보에서 동맹을 맺는 일에 공은 참여하지 못했다. 공은 뇌물을 주고 어려운 처지를 모면했다. 그러므로 경에는 흑양의 맹이라고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회’는 ‘모의’(謀. [左傳] 「僖公3年」)하는 것이라면, ‘맹’은 ‘복종을 요청’(請服. [左傳] 「僖公8年」)하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으며, 맹의 체결은 불안정하고 대립의 관계를 규범에 기초한 안정적인 상호 신뢰 관계로 구조화하는데 성공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국가 간 동맹 체결이 어떻게 예제에 부합하는 것일까? [좌전]에는 동맹을 의미하는 ‘맹’(盟)이 빈번하게 나오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무릇 제후의 패자가 환난을 구제하고 재앙을 나누며 허물이 있는 자를 토벌하는 것은 예에 맞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제환공이 규구에서 제후들을 회맹하고 패자로 추대되었던 사실을 평가하는 구절인데, 앞서 보았듯이 제환공이 실력과 도덕을 모두 갖추었다는 점을 투영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좌전]에서 “무릇 군사의 일은 종과 북을 치면서 쳐들어가는 것은 벌이라 말하고 그것이 없이 쳐들어가는 것은 침이라 말하며 방비하지 않고 있을 때 쳐들어가는 것은 습이라고 말한다”라고 정의 내리듯이, ‘벌’(伐), ‘토’(討), ‘침’(侵), ‘공’(攻) 등으로 물리적 폭력사용을 표기하고 “무릇 상대방의 나라를 싸워 망하게 하면 멸이라 하고 큰 성을 점령하면 입이라 한다”고 ‘멸’(滅), ‘입’(入)을 폭력의 결과로 구별함으로써 패자에 의해 이루어진 폭력사용과 그 결과를 당위성으로 선별한다. 결국 춘추시대 국가 생존을 결정하는 안전장치로 기능했던 ‘맹’은 역사과정의 연속선상에서 배출된 산물에 불과한 것일 뿐이었지만, [좌전]은 외형상 예제와 규범, 그리고 의리(義理)에 기초한 국가 관계와 행위를 기술하는 척 하면서 그 이면에 현실정치를 이끄는 실질적인 근거로 패자(覇)가 ‘예’와 ‘올바름’(義)의 명분을 선점했느냐에 주목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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