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춘추시대 동맹은 현실적으로 물리적 폭력에 대한 안전장치로 기능한 동시에 형식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는 상호성으로 말미암아 쌍무적 관계로의 규범성을 지닌다. 따라서 규범성과 폭력성이 공존하는 모순이 존재하지만, 그 모순을 아우르는 결정체가 바로 패, 즉 패자(覇者)이다. 그래서인지 [좌전]은 “큰 나라는 의로써 제후국들을 통제하여 패자가 되었고 제후들은 그 덕을 따르고 토벌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두 마음을 갖지 않는다 … 믿음으로써 의를 행하고 의로써 옳은 명령이 된다”는 인식을 소개하면서 ‘패’의 권위가 ‘맹’을 통한 상호 신뢰와 호혜성을 보장할 의지와 실천에서 비롯한다는 기대를 반영한다.
정말 패자의 동기가 ‘올바름’(義)에서 비롯했던 것일까? 오히려 패자의 결정과 행위가 ‘제후국들을 통제’하는 결과를 가져와 각 국의 생존을 보장했기 때문에 사후적인 ‘올바름’으로 합리화된 것은 아닐까? ‘춘추의 내용은 제환공, 진문공에 관한 일’이라는 지적처럼 최초의 패자로 제환공(齊桓公)을 거론한다. 제환공을 패자로 추대했던 규구회맹(葵丘之會. B.C. 651)에 대해 [좌전]은 규구회맹이 동맹관계를 살피고 또 우호관계를 닦은 것으로 예에 맞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것이 구합제후해서 일광천하를 이룬 패자 정립을 단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는 단면이기도 했다.
반면 제환공의 사례와 비교되는 패자의 사례는 진문공(晉文公)이다. 패자로서 진문공 역시 사적 동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초나라 성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진문공은 노·제·송·채·정·위·거나라와 천토(踐土) 동맹을 체결하면서 주 천자의 거처로 조회했다는 기사와 제·송·채·정·진·거·주나라와 온에서 회합하면서 천자를 하양으로 불러서 사냥하게 했다는 기사는 진문공의 압도적 위상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그런데 [좌전]은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신하로써 (하양에) 천자를 초청한 것은 교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도 “그가 천자를 정성껏 모신 덕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정치의 작동기제가 더 이상 예제가 아니며, 합의된 규범의 틀을 유지할 수 있는 실력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좌전]의 의도는 사적/공적 동기로부터 모두 폭력과 규범을 선택할 수 있는 합리성을 질서회복의 최우선 조건으로 제시하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제환공·진문공과 같이 어느 것을 선택해도 최종 결과로 질서를 도출할 수 있는 행위자를 합리성에 기초한 패자로 정당화한 셈이다. 패자가 지닌 ‘올바름’과 그 근거로서 규범과 실력의 겸비는 춘추시대 패자의 정치(覇政)가 공사(公私)의 경계를 도덕과 전쟁을 통해 끊임없이 정합해 나갔던 과정임을 예단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