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매미유충-제환공의 각성과
패자로의 완성 경로

by 철인이십팔호

소백과 관중의 만남, 훗날 역사에서 제환공과 관자의 결합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사건 이후, 곧바로 제환공으로 재탄생했을 것으로 단정해 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사기] 「제태공세가」에서는 환공이 관중을 얻고 나서 포숙, 습붕, 고혜 등의 인재를 등용하여 제나라 정치를 가다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섯 가구를 기초로 하는 군대조직을 시행하고(五家作統法), 화폐주조-어로 제염 등의 이익을 추구하고 빈궁한 자들을 구제했으며 능력 있는 현사들을 등용해서 제나라 사람들이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긴 역사의 호흡으로 볼 때 그런 것일 뿐, 세세한 과정을 살펴보면 결코 제왕으로서 환공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 자체가 환골탈태에 가까운 과제였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누누이 말하지만, 제환공은 애초에 왕위에 오를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도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고, 타고난 성품까지 더해서 사치와 향락으로 밤을 지새우는 왕자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갑자기 왕이 되었다고 그 삶의 루틴이 갑자기 바뀔 수 없다. 오히려 막내왕자 소백에서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예제를 보존하는 제환공으로 갑자기 바뀌었다면 바로 죽었을 것이다!(고씨와 국씨를 비롯해 당대 제나라 정국 참여자들이 자기가 알고 있던 소백이어야 대응이 가능한데 갑자기 제환공으로 변했다면 그들 역시 곤혹스러워서라도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제환공은 관중, 포숙, 습붕, 빈서무 등의 인재들을 등용하고 이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타고난 개성을 감추지 못했던 듯 하다. [사기]「제태공세가」에서는 아주 소략하게 제환공 2년에 담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기록과 함께 5년에 노장공과의 ‘가의 동맹’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전해주는데, 제환공을 각성하게끔 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소백이 왕이 된지 2년 만에 가장 뚜렷하게 행했던 일이 제양공 시해사건으로 망명을 떠날 때 담(譚)나라를 경유해서 거(莒)나라에 도착했던 일을 상기하고, 당시 자신을 푸대접했던 담나라를 무례했다는 이유로 멸망시켰던 것이다. 결국 제환공 같이 강한 개성과 자존심을 가진 왕자가 왕이 되었으니 관용과 신중함 같은 덕목을 갖추기보다 원래 개성 그대로 자신이 겪은 박대와 수모를 갚아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그 명분으로 담나라가 무례했다는 핑계를 댄다. 바로 이것이 춘추시대 국가존망의 가장 솔직한 양상이었다.


자, 제환공 입장에서 사적 복수를 공적 명분으로 당당히 합리화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더 대담해져서 다른 목표로 눈을 돌릴 차례이다. 그 대상은 바로 노장공이다. 왕위계승 경쟁에서 작은 형 공자 규를 후원했고, 큰 형 제양공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노장공에게 제환공이 복수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가의 동맹’ 체결 이전에 이미 제환공과 노장공은 또 한 번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첫 충돌은 노장공이 우위에 있었던 상황이라면 이제 두 번째 충돌은 그 일에 대한 제환공의 복수전이었기에 보다 제나라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것이 장작(長勺)전투이다.


그런데 위의 [사기] 「제태공세가」에는 그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제환공이 복수는커녕 노장공에게 완전하게 패배한 전쟁이기 때문이다.(사실 노장공이 드디어 복수한 셈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왜 제환공은 국력이 더 큰 나라를 가지고도 노장공에게 패전했을까? 그것은 [관자] 「대광」편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제환공이 왕이 된지 2년 만에 군대를 서둘러 정비하려고 했는데, 관중이 이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나라를 멸망시켰듯이, 송나라와도 분규가 발생해서 제환공이 이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사건의 발단은 제환공이 송나라 출신 부인과 뱃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송부인이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제환공을 놀리려고 뱃전을 흔들어 댔다고 한다. 이에 제환공이 흔들지 말라고 부탁하고 애원하다가 송부인이 계속 놀려대니까 화가 나서 송부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있었는데, 송부인이 소박맞아 돌아온 것을 본 오빠 송나라 군주도 화가 나서 송부인을 채나라로 개가시켜 버린 것이다. 제환공이 격분하여 자신의 허락 없이 개가시킨 송나라를 응징하려고 결정했던 것이다. 송나라 군주의 조처는 제환공에게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짓밟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관중은 알량한 자존심으로 주변 제후국과의 안정을 해치려는 제환공에게 내정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바깥 일 역시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렸지만 결국 제환공이 송나라를 침략하자 주변 제후국들이 송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패퇴시켜 버렸다.


제환공의 굴욕적인 패배 원인은 제나라의 국력이 약하거나 제후국들이 더 강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도 제환공이 제왕으로의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던 데서 비롯한다. 관중은 그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정을 먼저 충실히 하는 것만이 곧 외부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전제가 된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관중이 앞으로 제시할 부국강병책의 기본노선이기도 했다. 제환공은 아직 미숙하고 훈련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미완의 제왕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제멋대로 충동적인 제환공의 성급함과 생각 없음은 패배를 예견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포숙은 이런 제환공이 걱정이 되었는지 관중에게 패업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되묻는다. 그러자 관중은 제환공의 성질이 급하고 지혜를 더 많이 깨우쳐주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시간을 두고 깨우치는 중이라고 느긋하게 대답한다. 포숙이 그러다가 나라가 망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자 관중은 국내외 정치 모두 자신이 안배해 놓은 상태라고 안심시킨다. 그것은 아주 치밀하지만 각 역량에 따른 적절한 위임을 통해 경위(經緯)를 치밀하게 짜놓은 모양새를 취한다. 예를 들어 제후국들을 통제하는 외치는 총명하고 민첩한 습붕(隰朋)을 동쪽 나라들의 관리에, 성격이 굳세고 마음바탕이 좋은 빈서무(賓胥無)를 서쪽 나라들의 관리에 집중시키고, 위나라 같이 괴이하고 천박하여 실리만을 추구하는 나라는 공자 개방(開方) 같이 머리는 좋지만 참을성이 없는 인물에게 위임하며 육예를 좋아하고 예의를 훈도하는 노나라의 경우는 신용이 있는 계우(季友)에게 위임하고 기교와 꾸미기를 좋아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초나라 같은 경우는 박식하고 문장 꾸미기를 좋아하는 몽손(蒙孫)을 내세우면 안정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한편 내치는 포숙에게 대부를 심사하고 추천하게 하여 대부가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하고 공을 이루도록 선양하고, 안자(晏子)에게 귀인의 자제가 예의를 지키는지 여부를 심사하게 하여 천거하게 했으며, 고씨(高子)에게는 장인과 상인 중 효도와 공경이 높은 자를 천거하도록 하고, 국씨(國子)에게는 법과 감옥에 관한 업무를 위임해서 옥사를 판결토록 조처한다. 관중은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성질 급하고 제멋대로인 소백을 제왕의 길로 이끄는데 성공했지만, 아직 그 지혜와 신중함이 결여된 제환공이 실패를 맛보도록 지켜보는 중이었다. 좌충우돌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패를 맛보면서 제환공에게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중에 책사로서 자신의 역할은 제환공이 오직 각성에 성공할 수 있도록 주변의 모든 변수들을 통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포숙에게 알려주었던 셈이다. 이것이 책사의 모습이다.


3년째 되는 해에 제환공이 다시 노장공에게 복수전을 준비한다. 관중은 땅을 소유한 군주가 군비 증강에 힘쓰지 않고 남의 쓴 소리 듣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면 사직을 안정시킨다고 들었다고 조언하며 침공을 만류한다. 바로 전년도에 송나라에 복수전을 펼쳤다가 크게 패배했던 일을 반면교사 삼으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제환공은 어떠한 교훈도 깨닫지 못했고, 자존심과 분노가 얽힌 노장공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했고, 결국 장작전투에서 노장공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제환공은 패배의 원인을 노나라 군대보다 세 배 많은 병력수를 확보하지 못한데서 찾았지만, 사실 [좌전]에서는 “(장공) 10년 봄에 제나라 군사가 우리 노나라로 쳐들어왔다. 장공이 장차 싸우려는데 조귀가 뵙기를 청했다. 그 마을 사람이 말하기를 높은 관리들이 꾀하는 일인데 무슨 간섭인가? 라고 하니 조귀가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낮아서 아직 멀리 보고 꾀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장공이 (조귀와) 함께 전차를 타고 장작에서 싸웠다”고 소개한다. 즉 제환공, 노장공 모두 옳고 그름에 대한 사리분별 없이 복수전을 선택했던 경우였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좌전]은 사적 동기와 욕망이 실패의 원인이라면, 제환공의 성공 역시 이 사적 동기를 얼마나 배제하고 올바름에 대해 각성했는지 여부에 그 단서가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 극적 반전이 바로 제환공과 노장공 간 ‘가(柯)의 동맹’체결이다. [좌전]은 노장공 13년 겨울에 가에서 맹약을 맺고 비로소 제나라와 화평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제나라와 노나라 사이에 동맹이 체결된 것인지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다. 그 상세한 배경은 [관자] 「대광」편에 소개되어 있는데, 제환공 4년에 이르러 또 병력을 증강해서 보병 10만과 전차 5천승에 이르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노나라와 복수전을 계획했다고 한다. 관중은 제환공이 덕을 베풀기보다 군대에 힘을 쏟지만 주변 제후국 중에 10만 군대를 가진 국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점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키지만, 제환공은 침공을 강행한다. 노나라는 조귀를 내보내 3번 싸워 3번 패배함으로써 수세에 몰리자 맹약체결을 요청한다.


제환공 입장에서는 그동안 꺾였던 자존심을 어느 정도 회복한 셈이니 만족스럽게 동맹체결을 받아들인다. 동맹체결을 위해 두 나라 정상이 모일 회담에서 무기소지를 하지 않기로 노나라에서 요청하자 제환공은 군대를 철병할 것을 약속한다. 이 때 관중이 오히려 제환공의 위세를 제후들이 두려워하는 상황이기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여전히 제멋대로인 제환공은 관중의 조언을 무시하고 회담장에 비무장으로 들어갔다가 노나라 조귀가 죽음을 각오하고 기다렸다 칼을 빼들고 제환공을 협박하여 점령당한 노나라 영토를 돌려받는다. 물론 제환공은 조귀의 협박에 굴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관중은 조귀가 이판사판으로 제환공을 죽일 작정으로 뛰어들었고, 노나라 입장에서는 애국자였기 때문에 조귀를 죽이는 것도 결코 환영받지 못할 상황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관중은 제환공에게 점령지 반환을 약속하고 제환공의 안전을 확보한다. 제나라로 복귀하자 제환공은 더 이상 군대를 증강하지 않고 정무에만 힘쓰고 과격한 언행을 자제한다. 각성한 셈이다.


그런데 이 각성의 순간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사기]이다. [사기] 「자객열전」에는 제환공이 노하여 약속을 어기려고 하니 관중이 “안 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여 스스로 만족하신다면 제후들에게 신망이 떨어지고 천하 각국의 지지를 잃게 됩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그 땅을 돌려주시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재차 제환공을 설득해서 마침내 노나라에서 빼앗은 토지를 돌려주었다”고 결말을 소개한다. 다른 하나는 [춘추공양전]이다. 이 때 관중이 돌아보고 제환공에게 점령지 반환을 허락하시겠느냐고 묻자 제환공이 허락한다고 말하고 바로 조귀가 맹세를 청해서 제환공이 함께 맹세를 했다는 것이다. 맹세를 하자마자 조귀가 칼을 버리고 정상회담장에서 내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춘추공양전]은 “강제로 맺은 맹약은 침범할 수 있으나, 제환공은 그를 속이지 않았고, 조귀를 적(원수)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제환공은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제환공의 신의가 천하에 퍼진 것은 가에서의 맹약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제환공이 명실상부 패자로의 위상을 갖게 된 계기로 평가함으로써 이 사건의 주인공으로 제환공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제환공이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까지 겪어가며 각성한 바가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관중의 신중한 처신과 제환공이 사적 감정에 격앙되거나 매몰될 위험성을 미리 방지하여 신뢰할 만한 행위자로 자리매김하도록 관리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소백과 관중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달랐고, 이로 인해 그 목표 역시 달랐듯이, 각성한 제환공이 제왕으로 재탄생하고 더 나아가 패왕으로의 완성이라는 경로에 진입함으로써 비로소 관자의 국가운영 기획 역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관중을 등용하고도 초기 4년 간 제환공의 정치가 두드러진 특징 없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던 결정적 이유야말로 제환공이 성질이 급하고 지혜를 깨우쳐야 할 부족한 자질 때문이었지만 동시에 관중이 ‘시간을 두고 제환공이 깨우치도록 할 것’을 기다리면서, 각성한 제환공을 ‘패왕’으로 만드는 것을 현실목표로 채택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환공이 패자가 되어야 관중 자신의 최종적인 정치적 비전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획에서 관중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이 점이 핵심이다.


혹시 관중이 서두르지 않은 더 큰 이유로 자신과 같은 이방인들에 의해 제나라 내부변혁이 갑작스럽게 진행된다면, 제 아무리 강태공의 유지를 받들어 상무적이고 개방적인 에토스를 가진 제나라 기득권층일지라도 반발할 수 있다는 현실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과연 그만한 걱정으로 관중이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제환공을 각성시키고 완만히 제왕의 길로 유도했던 것일까? 관중에게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제나라 신민의 반발이나 반응이 아니라 제환공 자신도 인정하듯 그의 타고난 성품에 따른 단점을 스스로 고쳐야 한다고 각성하고 수정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제왕은 도움을 받으면 되지만, 도움을 주는 책사는 오랜 시간 기획대로 조심스럽게 제왕의 경력을 관리하는 대가로 자신의 피땀을 흘리는 법이다. 그것이 성공한 제왕으로 만드는 왕도이다.


더 주목할 만한 사항은 패왕이라는 목표를 간청한 관중에게 제환공이 3가지 병증이 있어서 과연 기대대로 제왕의 길을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대목이다. 그것은 사냥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며 여색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관중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며 3가지 병증이 단연코 좋은 것이 아니지만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라고 답변한다. 왜? 큰일 나니까! 겨우 제왕으로 각성시키고 패왕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의도에 동의했는데 자신의 무능을 드러낸 순간 이를 공격해버리면 아무리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라도 무너질 것이다. 관중이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자 제환공은 고무된다. 즉 이 3가지 병증을 괜찮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안 될 일이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관중에게 중요한 것은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처음과 시종일관하는 제환공의 태도와 신뢰였다.


바로 제환공 스스로가 자신의 단점을 인정한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제환공이 관중의 조언과 보위에 따라 패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장점이기도 했다. 이 호방하고 사치스러운 막내왕자는 최소한 자신이 믿고 위임한 책사의 말을 경청하고 따를 줄 아는 개방적이고 편견 없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우유부단함과 나태함을 방관하는 것이야말로 제왕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장 최악의 선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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