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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Sep 18. 2020

당신이 생각하는 훌륭함은 뭔가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무슨 답변을 할 것 같은가? 다들 알겠지만,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이런 류의 질문을 많이 듣는다. 마치 대단한 꿈이라도 가져야 할 것 같은 그런 질문. 그렇지 않으면, '너는 왜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려고 하니?'라는 식의 무시가 되돌아올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 '성공'이라는 단어 뒤에 '폭정'이라는 칼을 숨기고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자칭 '지혜'로운 사람들.(결코 타칭이 아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지금껏 자라왔고, 버티고 있다.(던지고 나니 유독 염세적인 말이 돼버렸지만, 세상을 항상 이런 식으로 바라보진 않으니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ㅎ..)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나라에서만 특출 나게 형성된 게 아니다. 우리가 그토록 신봉하고 쫓아가고 있는 ‘선진국’들에서 이미 이러한 세상을 겪고 있다. 오죽하면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와 관련된 생각들을 쏟아냈을까?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정하고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훌륭함이란 타인과 함께할 때 필요한 것이다.” - 아르노트 겔렌


독일의 사회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르노트 겔렌은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훌륭함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훌륭함이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약간의 사례를 들어서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 보겠다.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때를 생각해보자.  


혼자 일 때, 나 같은 경우에는 집 밖을 나가지 않는 경우라면 한낮에 잠옷 차림이 대수냐 싶고, 대충 침대에 널브러져 책을 읽으며 뒹굴거린다. 어느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단 생각에 렌즈는커녕 머리조차 손질하지 않는다. 그나마 대충 감고 말리는 정도..? 

반대로, 친구나 새로운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땐 어떨까? 외적 모습부터 예사롭지 않다. 렌즈는 기본이고, 고데기와 왁스까지 사용해서 머리를 손질한다. 옷은 또 어떤가? 강박적으로는 아니지만, 최소한 예의는 차려질 정도로 적절하고 단정하게 조화해서 입는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혼자일 때보다 여럿이 같이 있을 때 더 의식적인 사람이 된다. 한마디 말을 할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한다. 즉, ‘행동의 절제’가 생긴다. 그뿐인가? 겉모습도 보이고 싶은 모습대로 꾸민다. 가만 보니 나는 단정하고 깔끔한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타인과 교류할 때 사람들은 마치 달과 같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당신에게 오직 한쪽 면밖에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하는 바로 그 사람으로 늘 보일 수 있게 얼굴로 가면을 만드는 재주를 타고난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아르노트 겔렌은 바로 이 부분을 중요하게 집었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보이고 싶은 모습이나 행동이 ‘내가 원하는 훌륭함’이라는 거다. 즉, 우리는 남들과 만나기 전에 어떤 행동이나 준비를 하는지를 통해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훌륭한 모습’이 뭔지 파악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타인은 ‘나의 훌륭함’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만약 ‘타인에게 너무 과한 모습을 보이려 하진 않는가?’란 생각이 든다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특정한 모습을 ‘꾸며’서 보여주는 건 나쁜 게 아닌가요?‘라며 내게 질문할 수도 있다. 근데 이게 또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만은 않다. 20세기 프랑스의 사르트르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자각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마디로 타인이 있어야 자신을 의식할 수 있고, 비로소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타자임을 인식해야 한다.” - 장 폴 사르트르


발달 정신병리학의 이론도 이 주장에 힘을 더할 수 있다. 생후 12개월~24개월 사이의 아이는 타인과 상호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구분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결국, 발달 정신병리학적으로도 우리가 ‘자아’라는 걸 형성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정리하자면, 타인의 존재는 내가 추구하는 ‘훌륭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만약 자신이 어떤 모습을 ‘훌륭함’이라고 정의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의 경우는 단정하고 깔끔한 이미지다. 


혹시라도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왜 이러한 모습을 싫어하는 건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에게 숨겨진 고정관념이나, 잊고 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이 발견되었다면? 향후 자신의 행동들에 주의 기울이게 되는 선물을 받은 것이니 기뻐해도 된다. 현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남긴 말을 끝으로 글을 마치겠다. 우리는 타인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함을 의식하며!


“사적 영역을 중시하는 것은 진정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타인 관계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고, 이를 거부하거나 결여될 시 고독과 소외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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