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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04. 2020

자주 싸워. 그래도 정말 잘 맞아.

Day 5. 영국 도버 – 프랑스 깔레

 최근에 결혼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햇수로 8년의 연애시절을 보내고 올해 초 결혼해, 이제 결혼생활이 100일이 갓 넘은 새댁이다. 그 새댁이 내 남편이 내가 알던 그 놈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너네는 안싸우냐고 물었다. 아무리 오래 연애를 했던지와 상관없이, 결혼 후에는 서로에게서 새로운 모습이 발굴되고, 많은 경우 그것은 싸움으로 이어진다. 아침먹고 씻느냐, 씻고 아침을 먹느냐도, 요리하면서 설거지를 해두느냐, 다 몰아서 하느냐도 싸움의 이유가 된다. 

 우리도 여느 커플처럼, 결혼하기 전 정말 많은 순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나의 완벽한 짝이라고 느껴왔고 또 말해왔다. 그리고 연애하는 동안은 싸운 적은 물론이요, 서로에게 마음 상한 적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지만 순례길을 걷는 동안은 아마 짐작가능 하듯이 말그대로 밥먹듯이 싸웠다. 거의 하루 일과중에 한 시간 정도는 서로 다투는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인 지금, 하루에 한번은 아니지만 대강 일주일에 한번은 싸운다. 그렇지만 지금 누군가가 우리에게 “서로 잘 맞아? 잘 안 싸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응, 우리 자주 싸워. 그래도 정말 잘 맞아.”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아주 위험하게도 부부싸움 이야기를 신혼여행 에세이에 적는다. 


 영국 도버에서 멋진 절벽을 뒤로하고, 배를 타고 프랑스의 깔레로 향했다. 깔레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하며 오늘 걸을 길을 확인했다. 지도를 보니, 짧게 다음 목적지 긴느까지 가로질러 가는 길이 있었고, 조금 돌아서지만 바다를 따라 위상트라는 도시를 들려 긴느까지 며칠에 걸쳐서 가는 길이 있었다. 우리의 일정은 촉박했지만 바닷가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맞았던 우리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날씨가 흐려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부둣가를 걸으며 사진도 찍고, 모래사장을 걸으며 바닷물에 신발을 담가 보기도 하며 프랑스 첫날을 알차게 보내는 듯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발목이, 그다음에는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무게를 지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때는 그저 운동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가지고 온 스포츠 테이프로 테이핑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트래킹 초보자 두 사람은 스포츠 테이핑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길가에서 멈춰 부랴부랴 유튜브로 테이핑 방법을 공부했다. 10분여의 영상 시청 후, 어영부영 테이프를 붙이고 다시 걸어보는데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이삭이 내 가방까지 대신 메기도 해보고, 거북이만큼이나 천천히 걸어보아도 결국에는 너무 아파서 5km를 겨우 걷고 멈추기로 했다. 걷지도 못하고 짐이 되는 것 같았던 나도 마음이 참 답답했는데, 이삭도 어지간히 답답했나 보았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로마까지 가!”


 이삭이 날카롭게 한마디 던졌다. 안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 와본 프랑스에서 아파서 서러운데, 딱 하나 의지하고 있는 신랑이 던진 그 한마디가 어찌나 서운했던지 이게 내 탓이냐고 묻고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고 딱히 대꾸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입을 꾹 다물고 다리를 질질 끌며 이삭을 따라갔다. 마음속에는 걷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서운함이 눈 굴리듯 커지고 있었다. 아내가 아픈데 계속 걷자고 5km나 끌고 온 것도, 아니 애초에 이런 순례길을 신혼여행으로 생각한 것부터 잘못됐다고 마음 안이 웅웅거렸다.

 혼자 이렇게 마음속으로 눈 굴리느라 바쁠 동안, 이삭은 택시 번호를 찾아 몇 단어 아는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전화를 걸고, 내가 더 움직이지 않도록 발로 뛰어다녔다. 내 마음 안에 잠겨 있을 때는 안 보였는데, 불현듯 눈에 띈 바삐 움직이는 이삭을 보고 있자니 눈 굴리던 내가 멋쩍어졌다. 설상가상으로 10분 기다리라던 택시가 40분이 지나도 안 오더니, 전화를 걸었을 때는 대꾸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래서 한 시간에 한번 오는 버스를 기다려 타고는 다시 출발했던 깔레로 돌아와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 자기 배낭에 내 가방까지 메고 에어비앤비 3층까지 오르고, 자기도 많이 지쳤을 텐데 저녁까지 사 오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다른 의미로 또 눈물이 핑 돌았다. 무릎 아파하는 나를 보고 프랑스인 에어비앤비 호스트분은 어디서 구하셨는지 우리가 아는 그 호랑이 연고(프랑스에서 호랑이연고를 만나다니!)를 주셨다. 그리고 이삭이 걱정되는 눈빛으로 무릎에 연고를 발라줄 때쯤 에는 마음속에 서운함 눈덩이는 다 녹아 없어지고, 이 사람과 결혼해서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다. 


 지금까지도 우리 싸움의 패턴은 대체로 똑같다. 이삭은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정확히 반대로 사는 사람이다. 말 한마디로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대신, 이어지는 수많은 행동들로 다시 내 마음을 치료한다. 작가 게리 채프먼은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사랑의 언어를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이렇게 5가지로 정리했다. 그리고 위기의 부부가 서로가 어떤 사랑의 언어를 쓰는지를 아는 것 만으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괜히 딴죽을 걸 생각은 없지만, 이삭의 사랑의 언어를 명확히 아는 지금도 싸움을 피하기는 어렵고, 마음이 상하지 않기는 더 어렵다. 그래도 지금은 말실수 후에는 설거지며 청소며 더 바쁘게 움직이는 남편의 모습을 “아까 그렇게 말해서 정말 미안해.”로 듣게 됐으니, 그것 만으로도 책값은 아깝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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