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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Oct 26. 2022

내 사람

2016.10.29.

내 사람은 외출을 싫어해서 우린 주로 지붕 아래서 만났다.
워낙 집을 좋아하고 화장을 싫어하는 편이라 꾸밈없는 모습으로 보는 게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여느 연인처럼 걷고 싶었다.
어쩌다 밖엘 나가면 그 사람은 힘들어했다. 종일 신경을 곤두세웠던 나도 덩달아 힘들어졌다. 나가지 않는 게 둘을 위한 최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후에 같이 어디라도 걷자고, 그 사람이 먼저 약속을 했던 특별한 날. 기다려도 연락은 오지 않고 나는 굶었다. 뒤늦게 깜빡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낮 내내 옷매무새가 흐트러질까 머리가 망가질까 계속 거울을 들여다 봤던 날이었다.
괜찮다고 말은 했는데 목에선 뭔가 뭉글뭉글 올라왔다. 예뻐보이고 싶어서 구두를 신고 나갔던 날, 보폭을 따라잡으려고 빨리 걷다보니 또각또각 소리가 크게 나니까 '그 요란한 소리가 싫다'고 했던 말도 갑자기 생각났다. 그 때 한동안 운동화만 신고 다녔다.
서운함을 말하면 그 사람은 '나는 그런 걸 감당할 수 있을만큼 여유있는 나이가 아니'라고 했었다. 12센치 하이힐을 신고도 횡단보도 초록불이 간절하게 깜빡이면 달릴 수 있다. 재수가 없어서 발목이 나가도 좋으니 그냥 그런 게 너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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