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배움이 이끄는 삶, 의미를 찾는 여정
가게를 운영하며 가정을 돌보고, 학업까지 병행했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입학해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고, 십 년간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제는 문학을 전공한 이력을 살려 글쓰기 강의를 하며,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있다.
돌이켜보면, 배움은 내게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처음부터 이 공부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알고 싶은 것이 많았고, 내 안에 쌓인 질문들에 답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배우다 보니 내 안에 지식이 넘쳐 났고, 그것이 나를 밀어내듯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준비된 사람 앞에 길이 열린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뭐든 즐기려면 30%를 넘지 않게 배우라. 70%를 넘기면 직업이 되어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문장을 읽고 깊이 공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30%에서 멈추지 못했다. 배움이 삶이 되었고,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지식은 흘러야 한다. 고여 있으면 썩고, 나누면 더욱 맑아지니,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한다.
배움의 방향을 찾는 일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유목민들은 밤하늘의 북극성을 보며 길을 찾는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목표가 있어야 길을 잃지 않는다. 개척자의 동상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새로운 인생은 방향을 찾음으로써 시작된다."
어떤 목표를 세우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목표를 세우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평가 목표’를 갖고 살아간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며, 정답을 맞혀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실패하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 ‘학습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좌절하기보다는, '이 또한 신의 뜻이려니' 긍정적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학습 목표’의 중요성 깨달았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배움은 성적표나 수료증이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혜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움은 함께할 때 더 의미 있다
"5060 세대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다."
이 말이 유행어로 돌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여, 그 변화 속에서 나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지식은 나눌 때 더 커진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배운 것을 공유하고 싶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방법과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시각을 전하고 싶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배움도 길어져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배우고, 나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인생 후반전이 아닐까.
변화하는 시대, 배움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포노 사피엔스’로 시대가 변했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이 움직인다. 한때 컴퓨터에 빠진 아들을 보며 효자손으로 단죄하려 했던 무지를 반성한다. 컴퓨터 속에 새로운 직업이 화수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디지털 세계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우리 세대가 기를 쓰고 배워야 한다.
이제는 공무원이나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말하던 시대가 지났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세상을 주도하니 변화에 적응하는 개인과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배우기를 멈추는 순간,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내 인생, 삼모작을 준비하며
인생의 ‘삼모작’을 경작 중이다.
가게를 운영하고, 강단에 섰고, 이제는 책 쓰기에 집중할 때다.
물질적인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을 깨달았다. 배움은 내게 생기를 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준다. 나는 죽을 때까지 배우고, 쓰고, 가르치며 살아갈 것이다. 배움의 길 위에서 설렘을 잃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나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갈 것이다.
배움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기에 그 힘이 다하는 날까지 나는 계속해서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