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기꾼에게도 배울점이 있다
미용실을 하다 보면 별의별 손님이 다 온다. 그중에서도 단골로 정착하면서 ‘이렇게까지 친할 필요가 있나?’ 싶은 손님도 있었다.
나와 나이가 비슷 했던 20대 후반, 촌스럽게 생긴 동네 아기 엄마였다. 머리를 하러 오더니, 내가 바빠서 밥도 못 챙겨 먹는 것 같다며 라면을 끓여왔다. 순간 ‘이렇게 살갑고 착한 손님이 또 있을까’ 싶었는데, 그 라면이 그냥 라면이 아니었다. 친분을 쌓기 위한 밑밥을 깔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고 가고 먹거리를 나누고 그녀와 친해졌다. 가게에 딸린 방에서 함께 수다 떨고, 같이 밥도 먹고, 심지어 우리 집 귀한 물건이 어디 있는지도 알게 됐다. 어느 날, 고가구 보석함을 선물 받아 장롱 위에 올려 뒀는데, 그녀가 물었다.
"언니, 저거 뭐예요?"
"응, 고가구야. 선물 받았어."
그렇게 답한 게 실수였다. 그 후, 고가구 보석함은 증발했다.
당연히 그녀가 가져갔을 거라고 짐작은 갔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어쩌겠는가. ‘잃어버린 사람이 잘못이지’ 마음을 접었다.
이번에는 내가 집을 사고 잔금 치를 오 천 만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창 주식 거래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네에서 눈여겨 보던 상가 주택이 매물로 나왔고, 고민 없이 계약을 했다. 그런데 중도금을 치르고 잔금 날짜를 앞 둔 어느 날, 그녀가 찾아왔다.
"언니, 남편 자사주 팔면 일주일 안에 갚을게요. 5천만 원만 빌려줘요."
집 등기까지 맡기며 빌려 달라고 사정해서 빌려 줬다.
그녀의 남편은 대기업 직원이고 연봉도 높았다. ‘뭐, 일주일이면 준다는데…’ 믿고 빌려줬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주식이 떨어져서 못 팔고 있다고 핑계만 대고 줄 생각을 안 했다.
"주식이 아직 안 올라서… 내일이라도 주식이 오르면 팔아서 줄게요. 최종가 보세요. 너무 떨어져서요. 신문까지 들이 밀며 최종가를 확인 시켜 주었다."
"아침부터 내 놓았으면 점심때 상한가 쳐서 팔렸을건데요?"
입만 열면 눈하나 깜짝 안하고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나는 이미 주식이 출렁거릴 때 상한가를 찍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거짓말에 더 이상 농락 당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 남편 출근 직전 새벽에 그녀의 집에 쳐들어 갔다.
"저… 집 잔금 칠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아내가 빌려간 돈 남편이 해결해 주세요."
내가 새벽에 집에 찾아 오리라고 상상도 못 했던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사색이 되어 남편 앞에서 벌벌 기고 있었다.
덕분에 돈을 돌려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못 받았으면 어쩔 뻔 했는지, 지금 생각 해도 아찔하다.
그 후, 그녀는 강남으로 이사를 가더니
몇년 후 뻔뻔하게 다시 찾아왔다.
"언니, 재개발 딱지 살래? 한 개만 사도 지금 사면 세 배로 불려줄 수 있어!"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엔 ‘아, 또 시작이구나’ 하는 경고등이 켜졌다. 나는 대꾸도 안 하고 딱 잘라 말했다.
"난 그런거 관심 없으니 그냥 가세요."
딱지 세 개로 집 한채 분양 받을 수 있는데, 딱지 한 개만 사도 두 달 안에 세배로 불려 주겠다며 한참 떠들더니 대꾸를 안 하자, 바로 앞 아파트 사는 시누이 집에 간다며 떠났다.
‘처음에 사기 한 번 당할 뻔 한 게 참 감사한 일이었구나!’
서울에서 강남 상점 주인들과 친해지더니 80억대 사기를 치고 도망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때 돈을 못 돌려 받았거나, 재개발 딱지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믿었으면? 아마 내 인생도 출렁거리는 주식 차트처럼 폭락했을지 모른다.
덕분에 나는 사기 취향 손님을 한눈에 알아보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20대에 미용실을 하며 얻은, 값비싼 인생 공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