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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Dec 25. 2023

위이잉- 지금의 겨울

글을 위한 필사 <겨울의 언어, 김겨울>


겨울은 향으로 온다. 바람이 면에서 선으로 불기 시작할 때 겨울은 감지된다. 길고, 얇고, 뾰족해 콧속에서 와르르 산산조각이 나는 겨울바람에서는 차가운 결말과 냉랭한 시작의 냄새가 난다. 붙잡지 못한 시간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계절. 시간이 눈처럼 따뜻할 일은 없다. 나는 빨개진 코끝을 만지며 걷는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얼음이 뼈와 살과 근육을 다 통과해 버린 것 같다. 젖은 발밑을 바라볼 때마다 눈 위로 흐른 얼음물이 코끝으로 툭 떨어진다. 나는 그 어느 겨울에도 그 어떤 시간도 다 녹이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김겨울, <겨울의 언어_새 겨울>




위이잉- 위이잉- 위이이잉- 바깥은 어둡고 소리만 요란한 새벽이었다. 소리는 조금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어 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겨우 이불 밖으로 나와 차디찬 베란다 문 앞에서 코를 박고 소리의 출처를 찾아보았지만 소리가 떠난 자리, 가냘픈 불빛 아래로 하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소리의 정체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그 후로 몇 번의 눈이 밤사이 내린 어느 출근길이었다. 그의 정체가 낙엽 송풍기였다니, 그는 언제부터 눈 송풍기가 되었을까? 멀티도 이런 멀티가...


그 후로 꿈과 잠을 뚫고 들려오는 송풍기 소리에 간 밤에 눈이 왔음을, 돌돌 만 이불 위로 어둑한 아침이 왔음을 직감했다. 올해의 눈은 잠들었을 때 와서 소리로 멀어졌고, 경비 선생님은 차와 인도에 흰 점 하나 허락지 않겠다는 듯 위이잉- 소리를 내며 눈 사이를 훑고 다니셨다. 덕분에 빙판길 없는 길을 걸을 수 있었고, 그 때문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s가 준 눈오리 집게를 올해는 한 번도 쓰지 못했다. 간편한 틀대신 뭉친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어 본 적은 언제였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강원도는 눈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밤사이 내린 눈 때문에 현관문이 열리지 않았던 적이 많았고 마당 쓸기라는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에 집집이 품앗이하듯 서로의 마당을 쓸어주는 따스한 풍경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저 눈 내리는 날이 좋았던 아이들과 달리, 그칠 줄 모르는 눈을 쓸어 치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던 어른들은 골목 한가운데에 눈탑을 쌓았고 성인 키만큼 자란 탑은 봄이 되어 야 사라지곤 했다.수 많은 겨울날 중 아직도 선명한 기억은 설날즈음 허리춤까지 내린 눈을 헤치고 심부름을 다녀온 기억인데, 지금의 강원도는 예전처럼 눈이 오지 않기에 그 기억이 지난 세월만큼이나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마치 눈뭉치를 굴리며 빙그레 웃고, 저녁을 먹고 나온 사이 바닥에 떨어진 눈사람의 눈과 코를 황급히 주워 붙여두고, 덩치 큰 친구가 날린 눈뭉치에 아파하며 다음을 다짐하던 유년처럼.


김겨울 작가의 문장이 쓸쓸해서, 무슨 말인지 너무 알 것만 같아 마음이 갔다면, 눈사람 하나에도 행복했던 그때는 시간이 눈처럼 따뜻했던 것만 같다. 서성거리지 않고 다음을 기대했던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작가의 문장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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