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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Apr 12. 2024

무용함의 쓸모

달, 별, 꽃, 바람, 나무, 농담 그리고...

독서는 무용한 일이다. 그리고 언제나  무용한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독서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거나 자기 계발과 같은 효율성과 연결될 때  본질을 잃는다. 홀로 있는 시간를 무용한 것으로 채. 책을 읽어도 좋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다. 오랜 시간 무용한 것을 쓸모없다 여겼다. 어른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 돈이 되는 일인가를 따지거나,  얼마를 벌 수 있을지를 계산해 보는 게 먼저였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공부를 선택할 때도 늘 그것이 기준이었다. 그러니 일마다 힘들고 괴롭고 후회만 쌓여갔다.  


무용한 곳에서 무용한 사물과 만나는 것, 거기서 진짜 놀이가 생겨난다. 누웠다가 일어나는 자리, 밥 먹는 자리, 옷을 벗고 입고 양치질을 하고 공부를 하는 그 생활의 자리, 그런 일상의 자리로부터 자기의 몸을 감출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낸다는 것은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콜럼버스의 놀라운 힘과도 통하는 것이다. 아직 아무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키는 더 자라날 수 있고, 두 다리는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이어령, 읽고 싶은 이어령 중>


무용한 곳과 무용한 사물이 만나는 곳에 진짜 놀이가 생겨나듯이, 무용한 일로 채워지는 무용한 시간들 덕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만나게 되었다. 효율성을 내려놓고, 무용함을 선택할수록 즐거움은 커졌다. 무용한 독서는  더없이 즐겁고 쓸모없는 글쓰기는 신이 난다. 살아있다는 증거를 따로 찾을 필요 없이 매일의 무용함 속에서 삶을 배우고 느끼는 중이다. 물론  독서와 쓰기가 내 삶에 자리 잡을 무렵엔 습관처럼 효율성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책을 내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부터, 매일 두 시간의 독서로 부자가 될 수 있다 해보자며 결심하는 일까지. 그럴 때는 마음이 급해졌다. 글쓰기가 빨리 좋아져야 하는데, 독서 두 시간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데라는 마음들이 찾아와 원래 그것들이 가지고 있던 즐거움을 빼앗아 갔다. 해서, 천천히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도 괜찮아'라는 위로와 '무엇도 되지 말자'라는 작은 결심으로 마음을 돌려놓았다.


미스터 션사인의 김희성은 고애신에게 말한다.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농담" 그 말에 애신은 응원할 수 없다고 했다. 허나 나는 김희성을 응원하고 싶었다. 서슬 퍼런 식민지 사회에 이루고 싶은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이 살아갈 방도로 안성맞춤처럼 보여서다. 나라를 위해 삶을 내놓았던 투사들 역시 그런 무용함으로 지 않았을까? 고통스러워 보이는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결연한 의지와 끈질긴 투지와 막강한 체력일 것 같도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대부분 무용함에 있다. 남편과 나누는 실없는 농담에 한 번 웃어 보는 것과, 친구와 이어지는 끝도 없는 수다 같은 것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을 손으로 잡아보는 설렘과 바싹 마른 낙엽위를 가만히 걸어보는 시간과 닮은 무용함 말이다. 


그런 무용한 것을 삶 가까이 두려고 한다. 그러니 나의 독서는 늘 무용할 것이다. 쓰기 역시 쓸모없는 낙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 없이, 다만 이 즐거움이 쌓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언제까지나 내 삶의 빈 공간이 되어 계속 커가는 사람, 새로운 공간을 찾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벚꽃이 지고 있다. 하늘하늘 꽃잎이 떨어졌다. 작은 바람에도 한껏 떨어져 거친 땅 위로 모였다. 햇살은 눈부셨고, 꽃잎은 아름다웠다. 눈가에 마음에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떤 빈 공간에 그것들을 가득 넣어두었다. 나는 아주 조금 자랐고, 그 자람틈으로 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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