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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어라운드 Aug 09. 2024

세화 예찬

한 달 살기 숙소의 로망


첫 번째 숙소를 세화로 정했던 것은, 나의 minority 한 감성과 까다로운 숙소 조건 때문이었다.


많이들 가는 그런 유명한 지역 말고, 나만이 찾은 보물 같은 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었다. 한적한 마을에, 조금만 걸어가면 해변이 보이고, 파도는 잔잔해 아이와 물장구치기 좋은, 그런 곳이었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아파트나 빌라는 싫었다. 마당 있는 단독 주택에서, 층간 소음 없이, 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일 없이, 우당탕 뛰어보고 싶었다.


다만, 예산이 문제였다. 해변가에 독채를 검색하니, 한 달 숙소 비용이 어마무시한 곳들만 보였다. 나는 한 달 살기를 하러 가는 것이었지 한 달 동안 럭셔리 플렉스 하러 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숙소 검색으로 매일 밤을 씨름하다 보니, 내가 과연 한 달 살기를 갈 수는 있을까 의구심 마저 들었다.


그런 와중, 이처럼 까다로운 나의 조건을 만족시킨 곳이 바로 세화였다. 후기는 많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놀 수 있을 만큼 얕은 해변이 있는 데다가, 해변 앞 마을엔 도로를 따라 감성 맛집과 카페가 있는, 요즘 뜨고 있는 핫플레이스라 했다.


나는 두근두근해하며, 한 달 살기 하기 11개월도 전에, 숙소를 미리 예약해 버렸다.



나만 알고 싶은 곳, 세화


세화는, 그리고 우리의 첫 번째 숙소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곳은 낮은 돌담을 두르고, 작고 예쁜 정원을 안고 있는 곳이었다. 정원 안으로는 푸른 풀밭과 작은 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고, 벤치 옆에는 예쁜 분홍 꽃이 함께 피어나 있었다. 숙소 뒤편 꽃나무 주위로는 벌들이 쉼 없이 윙윙대며 날고 있어 다소 무서웠지만, 그 뒤의 바베큐 그릴과 테이블이,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도 이기고, 그곳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싶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며,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거실 창문 아래에 놓인 의자에 앉자, 푸른 정원과 파아란 하늘이 한눈에 들어와, 벌써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화장실 복도가 조금 무서워, 아이가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마다, 매번 엄마와 아빠를 찾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아내와 아이 셋이서 손잡고 숙소 밖으로 나가보니, 동네가 아주 고즈넉했다. 그동안, 아이와 함께 다니는 여행은, 매번 편의성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선택은, 늘 리조트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리조트에서 느낄 수 없었던, 한가함과 서정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동네 길을 걸으며 계속 감탄했다. 리조트에서 느낄 수 없었던 현지의 느낌이 너무 좋다며.


바닷가에 이르러 보니, 소라게가 잘 잡힐 것 같은 해변이 있었다. 집에서부터 들고 온  채집 도구를 꺼내어 아이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세 가족이 다 함께 바지를 무릎 위로 걷어 올렸다. 그렇게 모래를 파고, 바닷물을 떠내고, 소라게를 잡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쭈그려 앉은 아이는 다리가 아직 짧아, 엉덩이가 물에 닿아 바지가 금세 젖어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세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어갔다.


아내와 나는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이야기한다.


"다시 가고 싶은 세화"라고.



다시 가고 싶지만, 다음 기회에


그로부터 1년이 지난, 6월 어느 날. 아침에 등원 준비를 하던 도중, 문득 아이가 물었다.


"다음 여행은 언제야?? 여행 가고 싶어!!!"


우리는 불과 5월 중순에 태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아빠도 여행 가고 싶다. 다음 여행은 10월이야."

"빨리 여행 가고 싶어!!"


이 대화가 잊히지 않아, 출근하면서 제주행 비행기를 검색했다. 좋았던 세화를 다시 가면 어떨까 다시 상상해 보았다.


'어라? 꽤 저렴한데. 뭐지?‘


이번 주말 1박 2일로 제주를 가야 하나. 생각보다 저렴한 항공권 가격에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나 금세 싸한 느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혹시…?’ 하고 날씨 앱에 들어가 본다.



아 맞다. 이번 주부터 장마라고 했지.

아쉽게도 제주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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