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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동이맘 Sep 12. 2024

3살이 되던 해 어린이집에 보내다

벗어나서 살고 싶었다.

 우리 아들이 3세가 되는 해 어린이집에 보냈다.

 산후우울증이 와서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쉼이 필요했다. 결혼준비부터 출산, 육아까지 쉬지 못하고 달리기만 했던 나날들, 그저 앞으로 내달리기만 해서인지 탈이 단단히 났다.

 그 탈이 산후우울증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 버틸 뿐이었는데 문득 내 상태에 대해 내 마음과 딱 마주치게 되고 인정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너무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에 비친 모습을 확인한 때였다.

 그즈음 옹알이를 잘하던 아들도 말을 안 하고 나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삭막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하루였다.


 우리 모자가 삭막한 사막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고는 있었을까?


 '나'조차도 모르고 있었는데


 신랑 하고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또 싸웠다. 내 생전 그렇게 누군가와 싸워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투견처럼 서로 물어뜯었다. 물건이 날아다니고 아이 장난감이 부서졌다.

 우리 부부는, 아니 우리 가족은 그때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허리디스크가 있는 난,

 허리가 갈수록 아파와서 아이를 들 수가 없었고 그럴수록 아이에게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이때의 '나'는 처절하고 외로웠으며 절망을 느꼈었다.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다시 꺼내보는 것조차 두렵고 힘이 든다. 애써 깊은 마음속에 넣어두었는데 다시 끄집어내서 쓰려고 하니 손이 덜덜 떨리고 가슴이 쿵쾅쿵쾅 심장이 요동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다 신랑이 심각성을 느껴선지 회사에 육아휴직을 3개월 양해를 구하고 썼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잠시나마 아이한테서 떨어져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느긋하게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전에도 신랑은 나를 위해 여러 가지를 해주었고 해 주려고 노력했으며 보약도 지어주고 틈만 나면 외출을 시켜주긴 했었다. 하지만 전혀 내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는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준비를 같이 하자!'


 그때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어떤 뜻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신랑은 육아휴직을 사용한 3개월 동안 우리 아들의 생활습관을 잡으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기상시간, 취침시간, 낮잠시간, 밥 먹기 놀이시간 등 전반적인 하루 생활을 일과표를 만들어 시간에 맞춰 움직였으며 아이가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고 내려갈 수 있도록 운동을 시켰다. 분유를 끊고 우유로 바꾸고 혼자 밥을 먹게 수저연습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처럼 널 사랑하고 생각해 주는 남편은 없을 거야!

 우리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건 널 위한 거야~ 오로지 널 위해서 보낸 거니까!"


 이 말을 들은 지 정확히 3년이 지난 뒤 이해가 되었다. 진짜로 나를 위해서 우리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것임을 말이다. 신랑은 지금도 말하지만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싫어했다. 자신은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어린아이가 엄마 옆이 제일 최고고 안전하지 왜 어린이집에 보내느냐고 말이다. 우리 신랑, 나와는 6살 차이 나는 오빠이지만, 시부모님이 막둥이로 낳아 생각하는 건 옛날사람이다. 아버님은 근현대사를 다 겪은 분이셨다. 해방둥이로 태어나셔서 어릴 적엔 한국전쟁까지 겪으신 격동의 세월을 보내신 분이시고 어머님은 한국민속촌에서 옛날 집을 보실 때 '내 어릴 적 이런 집에서 머슴 부리며 살았는데... ' 그러시는데 입이 떡 벌어졌다.

 시어머님이 손주는 엄마가 봐야 한다고 절대로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는데,

 (아동학대로 이슈가 많이 되던 때였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서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고 사랑이며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꼰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숨통이 틔일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였다.

 '코로나'와 함께 어린이집 등원을... 마음고생의 시작을 알리는 그때의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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