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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l 24. 2020

딸이 캥거루족을 선언했다.


출근 전 아침은 늘 바쁘다. 이른 출근이 아니라 한가할 것 같지만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고 이불 정리하고 청소기 밀면 아침 먹을 시간도 빠듯하게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가을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이 자취방을 정리하고 돌아오기 전 방 정리를 하느라 더 바쁜 아침, 핸드폰의 카톡이 정신없이 울렸다. 딸이다. 수업 중인 딸의 카톡은 늘 조마조마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우리 집 대표인물.


격주 등교인 탓에 등교하는 주는 수업보다 수행평가가 더 많다. 이번 카톡의 주제는 수학과제탐구 수행평가였다. 어디가 아프다는 카톡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대학교 학과도 그렇지만 도대체 이름만 봐선 뭘 배우는 과목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배우는 내용보다 중요한 과목이다. 공과계열 학과를 진학하려면 선택과목으로 수학과제탐구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단다. 큰 애를 대학에 보냈지만 입시 설명회 한 번 안 가본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성적 좋은 아이들만 쓸 수 있는 줄 알았던 교과 전형은 대학교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고 보통의 아이들이 쓰는 종합전형은 학과 적합성을 보는 전형이란 것도 이번에 알았다. 요즘은 아이를 대학에 보내려면 아이도 아이지만 엄마도 엄청 공부를 해야 한다. 애만 잘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던 시절이 그립다.  



‘수학과제탐구인데 내 삶의 경제적 계획은 왜 쓰라는 거지? ‘ 대학에 입학하는 20대부터 인생 계획을 숫자적으로 적어보는 것이 수학과제탐구 수행평가라고 했다. 첫 시작은 성인이 되면 들어야 한다고 자기들끼리 웅성거렸다는 보험 이야기. 보험 종류만 물어보고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질문이 디테일했다. 엄마 바쁜데..


보험 질문이 끝나니 이번엔 대학생이 되면 할 수 있는 알바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사촌언니의 아르바이트비부터 지금 다니는 학원의 대학생 알바 조교의 주급까지 꼼꼼히 계산하며 숫자에 입각한 20대 인생 계획을 세우는 딸. 생각보다 많은 사촌 언니의 아르바이트비(월 90만 원 예상)에 놀라고 생각보다 적은 학원 조교의 아르바이트비(월 40만 원 예상)에 또 한 번 놀라는 듯했다. 일하는 시간이 다른 건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딸은 야무진 듯한데 늘 2% 부족하다. 아들은 100% 부족한 듯한데 가끔 2% 디테일하고.. ^^;;


한 달 용돈이 10만 원인 고등학생에게 월급 90만 원은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는 돈일 테지. 하지만 용돈이 아닌 생활비라고 한다면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친다는 걸 아이는 아직 모른다. 그렇게 딸은 바쁜 나를 카톡으로 붙잡고 20대, 30대, 40대, 50대의 삶을 숫자적으로 풀어나갔다. 아직 순수(?)한 딸의 계획 속에서 용돈 70만 원도 받았다. 나도 그랬었지. 아르바이트해서, 취업해 월급 받아서 동생들 용돈도 주고 생활비도 보태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세상에 나오니 내 앞가름하기도 힘들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때보다 더 힘든 세상이 되었다. 물질적으로 더 편리해지는데 왜 살기는 더 힘들어지는 걸까.



그리고 아이의 수행평가에 숫자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스치듯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기억한다. 아이가 듣고 있다고 생각지 못하고 요즘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힘들다, 걱정이다는 이야기를 남편과 종종 하는데 아이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27살에 취업할 거야."

"(콕 집어 27살은 뭐지?) 왜? 너도 군대가?"

"ㅋㅋㅋ 아니. 취업이 어렵잖아. 그럼 26살에 해볼게."


그렇게 한참 동안 딸은 인생 계획을 세웠다.

26살에 취업하고 30살에 대리 달고 34살에 과장. 40살에 부장. 50살에 퇴사. 그 후엔??




보험과 저축으로 남은 삶을 살아간단다. 엄마도 그러고 싶다. ㅜㅜ  


그렇게 딸은 내 아침 시간을 훔쳐가 수학과제탐구 수행평가를 완성했다. 쉼 없이 달려가는 딸의 인생계획표를 보니 계획대로 평탄하게 가는 인생도 그다지 만족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중간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결국 이게 사는 이유인 걸까. 한 줄 요약이 가능한 인생은 참 재미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딸의 카톡이 도착했다.



나 독립 안 할래.
엄마랑 살 거야.
돈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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